전날 단기자금시장의 금리가 4%를 돌파하면서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A1등급 CP 31일물 기준)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고,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진데 이어 지난달 말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가 불을 질렀습니다. 지자체인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음에도 부도가 발생하자 신뢰가 생명인 자본시장에서 불신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아버린 것이지요. 정치권의 리스크가 금융권으로 전이된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호텔롯데가 지난 2020년 7월 발행한 CP는 전날 유통시장에서 5.21%에 팔렸습니다. 2년 전 발행 당시 연 2%대에 불과했지만 만기를 한 달 여 남기고 금리가 두 배 가까이 뛴 겁니다. 신용도가 AA로 우량한 SK하이닉스(000660)의 1년 만기 CP도 전날 5.34%에 발행됐습니다. 지난해 4월 3년 만기 자금 5500억 원을 연 1.50%에 조달한 것을 감안하면 1년 반 만에 조달 금리가 약 3배 상승했습니다.
SK렌터카(068400)는 회사채 시장에서 확보하지 못한 자금을 단기자금시장에서 추가로 조달하며 금리가 크게 뛰었습니다. SK렌터카는 지난 13일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1.5년 만기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요. 300억 원 모집에 100억 원 어치 주문을 받는데 그쳐 밴드 최상단인 6.11%로 발행 금리가 결정됐습니다. 이번에는 단기자금시장에서 3개월 만기 자금을 조달했는데 연 7.5%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투자자를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단기자금시장은 기업들이 급전을 마련하는 주요 통로입니다. 회사채를 통한 장기자금 확보가 어려운 저신용 기업들이 특히 많이 찾지만 올해는 회사채 시장이 마비되면서 우량 기업들의 발행까지 크게 늘어난 추세입니다. 다만 만기가 짧은 단기자금은 외부 충격에 민감해 변동성이 크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번 레고랜드 ABCP 여파가 일파만파로 커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과거 금융위기의 경우에도 위기의 전조는 대부분 단기자금시장에서 시작됐습니다. 단기성 자금으로 연명하다가 시장에 경색이 발생하면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금융위원회도 이같은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채안펀드의 여유 재원 1조6000억 원을 신속히 투입해 매입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금융위가 채안펀드의 재원을 최대 20조 원 규모로 추가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현재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기관의 유동성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출자 여력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단은 ABCP 매입 확약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증권사들을 지원해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고 기업의 CP 매입을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