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멤버'는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아직 뿌리 뽑지 못한 친일의 잔재부터 사적 복수의 정당성, 세대 통합,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메시지는 진한 여운으로 다가오고,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든다.

'리멤버'(감독 이일형)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80대 알츠하이머 환자 필주(이성민)가 기억이 다 사라지기 전 평생을 준비한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다. 필주는 복수를 위해 아르바이트 중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절친이 된 20대 인규(남주혁)에게 운전을 도와 달라 부탁한다. 이유도 모른 채 필주를 따라나선 인규는 첫 복수 현장의 CCTV에 노출돼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다. 위험에 처한 인규는 아버지 수술비 마련을 위해 결국 필주와 동행하기로 마음먹고, 이들의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된다.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작품이다. 외피에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친일파 단죄와 사적 복수의 타당성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친일파에게 맞아 죽은 아버지, 이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생을 마감한 어머니,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누이, 강제 징용 당한 형까지, 필주는 친일파에 의해 모든 걸 잃는다. 그는 복수의 칼날을 숨기고 있다가 친일파와 일본인을 한 명씩 죽이기 시작한다. 이런 필주의 모습을 통해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은 상관없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나아가 법이 심판하지 못한 사적 복수는 정당한가에 대한 물음도 함께다.

60세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필주와 인규의 모습을 통해 세대 통합의 메시지도 전한다. 필주는 '존맛탱' 등의 신조어를 즐겨 쓰며 인기 PC 게임을 즐기는 등 젊은 세대와 적극 소통한다. 인규는 이런 필주를 존중하면서 편하게 대하고, 고민도 털어놓는다. 필주와 인규는 서로만의 인사 제스처가 있을 정도로 격 없는 사이다. 세대를 뛰어넘어 진한 우정을 나누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세대 갈등 봉합에 대한 작은 희망을 보여준다.

내피로 들어가면 '인생에서 꼭 이뤄야 될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포함돼 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필주의 기억은 점점 사라져간다. 희미해진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남은 건 복수에 대한 기억뿐이다. 기억이 사라져가자 복수해야 될 대상의 이름을 직접 손가락에 새길 정도로 필주의 의지는 강력하다. 이런 필주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마지막까지 기억해야 될 무언가, 혹은 죽기 전 꼭 이뤄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80대 노인을 연기한 이성민의 변신은 놀랍다. 말투부터 걸음걸이, 자세까지 노인 그 자체다.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느라 촬영 중반부부터는 목 디스크가 생길 정도였다고.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성민이 선보이는 노인의 액션도 눈여겨볼 만하다. 느린 속도의 액션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 이성민은 묵직한 눈빛으로 속도가 주는 긴장감을 대신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