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은 왜 아이스크림 회사와 전시를 열까?[똑똑!스마슈머]

롯데百×하겐다즈 컬래버 '멜팅포인트'展
'프리미엄' 철학 접점 브랜드 스토리 풀어
'비싼 제품·공간'이라는 이미지 그 너머의
멋진 보상, 행복한 순간 등 경험으로 연결
"가치 공유 브랜드와 기획전시 계속 열것"

나무13, 코스모스, 84x59cm, 디지털 프린트, 2022

어두운 밤, 한 여성이 욕조에 몸을 담갔다. 조명은 따뜻하고,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적당히 기분 좋은 물의 온도가 느껴진다. 아늑한 이 시간, 이 공간을 상상하니 하루의 피곤함이 절로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휴식을 취하는 여자의 손에는 ‘작은 무엇’이 들려 있다. 맛있지만 가격은 부담스러운, 그래서 특별한 때 ‘선물처럼’ 먹게 되는 그 간식.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의 대명사 ‘하겐다즈’다.


이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나무13의 ‘코스모스’다. 롯데백화점이 하겐다즈와 잠실 에비뉴엘에서 개최 중인 ‘멜팅포인트’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으로 하겐다즈의 유명 CF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멜팅포인트(Melting Point)는 사전적으로는 ‘고체가 액체로 바뀌는 온도’ 즉 ‘녹는점’을 뜻한다. 총 22점의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입에서 녹는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차가운 한입, 달콤함이 퍼지는 행복한 그 순간

나무13은 코스모스에서 단순히 아이스크림 뿐만 아니라 목욕이라는 행위가 주는 아늑한 감정도 스토리에 녹여내려 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하겐다즈 관계자는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미지 외에 다양한 경험과 스토리가 전시를 통해 고객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는데, 작품에 그런 바람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만족해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의 판매량은 매월 25일 올라간다. 왜일까? 바로 이날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많고, 자신에게 ‘한 달 동안 애썼다’는 칭찬의 의미로 평소보다 비싼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림 속 욕조의 여자도 ‘그래, 이번 달도 잘 버텼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롯데백화점은 서울 잠실 에비뉴엘에서 하겐다즈와 컬래버한 ‘멜팅포인트'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거울 표면에 발생하는 시청각적 자극을 통해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감각을 표현한 정우원의 ‘감각의 자극’/송주희기자

아트 비즈 경쟁 속 ‘전시 공간’ 넘어 ‘작품-백화점 연결’ 눈길


롯데백화점은 서울 잠실 에비뉴엘에서 하겐다즈와 컬래버한 ‘멜팅포인트'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송주희기자

멜팅포인트는 롯데백화점 아트컨텐츠실이 기획한 ‘브랜드 컬래버’ 전시다. 이번 전시가 눈길을 끄는 것은 백화점이라는 공간과 협업 브랜드의 접점을 찾아 흥미로운 스토리로 풀어냈다는 데 있다. 최근 대형 백화점들은 ‘아트 비즈니스’를 내걸고 미술 관련 사업이나 이벤트로 고객 다변화와 새 먹거리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선보이는 전시 역시 기존 미술관의 그것처럼 특정 주제 하에 주요 작가의 작품을 걸고 소개하는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관람객 입장에서 (매번 그럴 필요는 없지만) 작품 내걸린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곱씹어 볼 기회는 거의 없다. 멜팅포인트 전시는 조금 달랐다.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한 조형물과 영상, 그림을 둘러보는 내내 ‘백화점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떠올랐다.



롯데백화점은 잠실 에비뉴엘에서 열리는 ‘멜팅포인트' 전시에서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와 관련한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송주희기자

롯데백화점은 잠실 에비뉴엘에서 열리는 ‘멜팅포인트' 전시에서는 아이스크림 브랜드 하겐다즈와 관련한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송주희기자

많은 이의 머릿속에 백화점은 이런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일상과는 다른 ‘특별함’을 부여하는 곳, 적당한 허영심과 환상을 자극하는 장소, 고단한 어떤 기간을 보낸 나에게 달콤한 선물과 멋진 보상을 안겨주고 싶은 공간…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겐다즈 냉장고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어떤 맛을 살까’ 망설이는 기분과 백화점을 돌며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그 기분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하겐다즈의 창립자 루벤 매터스&로즈 매터스 부부/하겐다즈 홈페이지

'하겐다즈가 필요한 최고급의 순간’ 공략…철저한 프리미엄화

하겐다즈는 1960년 뉴욕에서 탄생한 브랜드로 합성 색소를 쓰지 않고 크림, 우유 등 고품질의 원료와 부재료를 사용하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의 대명사다.



하겐다즈/하겐다즈 홈페이지

1960년대 미국에서 판매되는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거친 질감에 강한 단맛을 강조한 것들이었다. 하겐다즈의 창립자 루벤 매터스&로즈 매터스 부부는 순수하고 질 좋은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에 사용할 딸기 하나를 찾는 데만 6년을 보낼 만큼 재료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하겐다즈 앞에 붙는 ‘프리미엄’, ‘명작 중의 명작’이라는 수식어에는 단순히 ‘비싸다’는 의미를 넘어 ‘아이스크림이란 만족스러운 경험 그 자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들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이다. ‘천연’, ‘낙농’, ‘자연’의 느낌이 나는 유럽풍 이름에 호텔·레스토랑·비행기(기내식) 등의 납품처로 ‘고급 이미지’를 연결하려는 부부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백화점의 근대화 이끈 롯데, 고급 위의 고급 ‘에비뉴엘’


1979년 서울 소공동에 ‘롯데쇼핑센터’라는 이름으로 문 연 롯데백화점/롯데지주

롯데백화점은 1979년 12월 서울 소공동 본점이 ‘롯데쇼핑(023530)센터’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롯데 기록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은 국민들의 소비 욕구와 구매 패턴이 다양해졌지만, 유통업을 대표하는 백화점 대부분이 영세하고 운영 방식이 근대화되지 못했던 시기였다. 이때,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당일에만 30만 명의 서울 시민이 방문했는데, 당시 최고급 자재를 사용한 건물 안팎의 화려한 자태와 고급 제품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렸다고 한다. 개점 100일 만에 입장객 1000만 명을 돌파한 롯데쇼핑센터는 영업 첫해(1980년) 454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1982년에는 단일 점포로는 국내 유통업체 최초로 1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그리고 2005년, 또 한번 ‘프리미엄’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명품 전문관인 ‘에비뉴엘’이다. 당시 소공동 본점 옆에 문 연 에비뉴엘은 5200평에 건물 전체를 고급 갤러리와 같은 분위기로 꾸며 눈길을 끌었다. 층마다 정원을 설치하고, 매장 곳곳에 그림을 걸었으며 다른 백화점 명품 매장과 차별화하기 위해 국내에 덜 알려진 명품 브랜드를 대거 들여와 화제를 모았다. 이 ‘고급 중의 고급’ 을 추구하는 매장은 현재 서울 소공동 본점과 잠실점, 부산 본점 등 총 3개 점포에서 운영중인데, 전시가 열리는 잠실점 에비뉴엘은 명품 3대장인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이 모두 입점한 곳이기도 하다.



롯데백화점의 ‘에비뉴엘’은 명품 특화 점포로 이 중 잠심 에비뉴엘은 명품 3대장인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이 모두 입점한 곳이다./연합뉴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영애 롯데백화점 아트컨텐츠실장은 “롯데백화점이 지향하는 프리미엄 이미지와 60여 년 아이스크림 하나에 장인 정신을 쏟아온 하겐다즈가 추구한 철학이 잘 어우러진다고 판단해 아트 전시를 기획했다”고 했다. 하겐다즈를 시작으로 앞으로 백화점과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는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와 협업해 추가로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무료로 진행되는 전시는 천천히 둘러봐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하겐다즈 파인트 통에 들어온 것 같은 ‘짧지만 달콤한 시간’이 끝난다. 전시장 문밖으로 나서면 또 다른 프리미엄의 세상, 롯데백화점 잠실 에비뉴엘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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