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전염병 확산에 책임이 있는 농장주를 상대로 지방자치단체가 피해자로 나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강원도 철원군이 세종시에서 축산업을 하는 A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 등은 2015년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한 돼지 이동제한명령을 무시하고 철원군의 농장주 B씨에게 새끼 돼지 260마리를 팔았다. 이 때문에 B씨의 농장에도 구제역이 확산됐다.
이에 철원군은 B씨 소유의 돼지 618마리 등 가축을 살처분한 뒤 보상금과 생계안정자금 명목으로 총 1억7000여만원을 우선 지급했다. 이어 A씨 등 세종시 축산업자와 중개업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A씨 등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지자체가 직접 피해자로 나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가축전염병예방법이 정한 이동제한명령은 전염병의 발생과 전파를 막기 위한 규정일 뿐, 철원군처럼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한 지자체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자체가 가축 소유자에게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지자체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철원군이 보상금 등 재원을 쓰게 된 원인이 A씨 등의 이동제한명령 위반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법령상 근거 없이 곧장 A씨 등에게 배상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