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정부 지침을 어기고 가축을 이동시켜 전염병을 확산시킨 축산업자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3일 강원도 철원군이 축산업자 A씨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구상금은 타인을 대신해 일정 금액을 제3자에게 변제한 뒤 그 돈을 다시 타인에게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A씨는 지난 2015년 2월 지자체의 이동제한명령을 어기고 중개업자를 통해 철원군에서 축산업을 하는 B씨에게 돼지 260마리를 판매했다. 그러나 철원군 농장에서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되자 당국은 돼지 618마리 등을 살처분했다. 여기에는 A씨가 판매한 돼지 260마리도 포함돼 있었다. 철원군은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과 생계안정 비용 지급 등으로 1억 7000여만 원을 썼다.
철원군은 이후 A씨와 중개업자 등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A씨 등이 이동제한명령을 무시하고 돼지를 바깥으로 보내 구제역이 퍼지는 데 일조했고 그로 인한 비용까지 지출하게 됐으니 이를 돌려받겠다는 취지였다.
1·2심 재판부는 철원군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A씨 등의 이동제한명령 위반 행위와 살처분 보상금, 생계안정비용, 살처분비용 지급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하급심이 승소 근거로 삼은 이동제한명령은 가축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일 뿐 구상금 청구 소송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지방자치단체가 가축 소유자에게 살처분 보상금 등을 지급하는 것은 가축전염병의 확산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의무로 규정된 사안”이라며 “가축전염병 확산 원인이 이동제한명령 위반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살처분 보상금 지급이 이동제한명령 위반과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 배상받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