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등 4개국 국방장관과 연달아 전화 통화를 하고 "우크라이나가 분쟁지역에 ‘더티밤(방사성 물질을 채운 재래식 폭탄)’을 쓸 것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군이 점령지 헤르손의 인근 도시인 미콜라이우를 공습한 이날 쇼이구 장관이 전쟁 격화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리자 서방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거짓 깃발' 작전을 펼친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이날 쇼이구 장관은 영국의 벤 월리스, 프랑스의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튀르키예의 훌루시 아카르 국방장관에 이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미국과의 통화는 21일에 이어 사흘 만이다.
그는 네 차례의 대화에서 일관되게 "전황이 급속히 악화해 통제되지 않는 국면으로 향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더티밤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티밤은 일종의 방사능 무기인만큼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유사한 재난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서방과 우크라이나 측은 전황에서 밀리는 러시아가 전세 역전을 위해 핵무기를 동원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는 만큼 쇼이구 장관의 주장 역시 '밑밥 깔기'에 가까운 것으로 일축했다. 오스틴 장관은 "러시아가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내세우는 어떠한 명분도 거부한다"고 밝혔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누구든 이곳에서 핵무기를 쓴다면 그것은 딱 한 군데"라며 이번 연쇄 통화의 배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고 비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도 "러시아는 종종 스스로가 계획한 일로 다른 이들을 비난한다"고 자작극 가능성을 지적했다. 추후 러시아가 핵 위협에 핵으로 맞대응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가짜 명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민간 지역을 재차 공격한 점 역시 쇼이구 장관의 주장을 퇴색시켰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는 이날 미사일 등을 발사해 헤르손 북서부에 위치한 미콜라이우의 아파트를 파괴해놓고 전쟁 격화를 우려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러시아는 앞서 19일 헤르손 점령지 주민들에게 대피를 권고한 데 이어 주말 사이에 주민 전원에게 ‘살기 위해’ 즉각 떠나라는 긴급대피령을 내리며 남부 전선에서 대규모 군사 충돌이 임박했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