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10년 간의 절치부심 끝에 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별도의 취임식은 갖지 않았다. 직함 명칭이 달라졌을 뿐 이미 삼성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리더였을 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 ‘조용한 취임’의 배경으로 해석된다.
27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자 이사회 의결로 회장 자리에 취임한 이 회장은 별도의 취임 관련 행사를 갖지 않을 예정이다. 이틀 전인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후 사장단과 만나 밝혔던 내용을 정리한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리긴 했지만 이외에 별도의 취임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이 회장은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선대의 업적과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게 제 소명”이라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첫 소회를 밝혔다. 지금껏 꾸준히 강조했던 ‘기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뉴삼성’ 경영철학을 제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회장 자리에 오르는데 별도 행사가 없는 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오히려 ‘이해할 만한 행보’라는 분위기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이 회장이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끌어 왔고, 이미 삼성을 대표해 경영 활동을 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취임 메시지나 행사를 하는 게 오히려 더 어색할 수 있다는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 또한 2018년 5월 삼성그룹의 동일인(실질적 총수)으로 이 회장(당시 부회장)을 지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회장은 2014년부터 △미래 성장사업 선정·육성 △조직문화 혁신 △노사관계 선진화 △청년 일자리 창출 △CSR·상생 프로그램 강화 등을 주도하면서 삼성을 이끌어 왔다. 특히 2018년 180조 원 투자·4만 명 채용 발표,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발표, 2022년 반도체·바이오·신성장 정보통신(IT) 등에 450조 원 투자(역동적 혁신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 등 삼성의 미래 먹거리 준비를 주도했다.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를 두루 다니며 임직원과 소통하고 회사별 미래 사업을 점검하는 등 오랜 기간 삼성의 총수로서 활동해왔다”며 “전에 없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취임 메시지’ 등을 내는 것은 현재 삼성의 상황에서는 부자연스럽다”고 언급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고조 등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을 고려했다는 해석도 있다. 여기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이 회장의 개인 성품 또한 ‘조용한 취임’의 배경으로 읽힌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승진은 실직적인 그룹 리더 역할에 대한 객관적인 상황을 직함에 반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대내외 활동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