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협력 업체 근로자 430명이 정규직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이날 대법원은 직접 생산 공정뿐만 아니라 간접 생산 공정을 담당하는 근로자 파견을 불법으로 판단했다. 경영계는 도급 등 사내 하청 대부분이 불법이 됐다며 우려했다. 산업계 현실에 맞지 않는 파견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게 경영계 주장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와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7일 현대차·기아 하청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담당한 모든 공정에서 파견법상 근로자 파견 관계가 성립했다”며 “원심 판단에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2010년 현대차·기아 ‘직접 공정’에서 일한 사내 협력 업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준 적은 있지만 도장 등 ‘간접 공정’ 근로자들의 파견 근로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간접 공정을 포함해 원고들이 법정 다툼 기간에 담당한 모든 공정에 관해 근로자 파견 관계의 성립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현대차·기아 2차 협력 업체 근로자 A 씨 등은 현대차·기아가 직접 고용할 의무가 발생했다며 고용 의사 표시, 임금 차액 또는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여러 건 제기했다. 근로자들은 파견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했을 때 회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1·2심은 근로자 파견 관계를 인정하고 현대차·기아가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현대차·기아 협력 업체 근로자들의 직접 고용은 물론 그동안 받지 못했던 정규직 근로자로서의 임금 차액을 돌려받게 됐다. 도장, 의장, 생산 관리 등 업무를 수행하는 하청 업체 근로자 430명을 대상으로 회사가 지급해야 할 돈은 107억 원이다.
최근 회사를 상대로 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사측의 패소가 잇따르고 있다. 2020년 7월 현대위아를 시작으로 포스코 등이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고 한국GM·현대제철·삼성전자 등이 2심에서 패소한 채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법원이 잇달아 관련 소송에서 근로자 측 손을 들어주면서 직접 고용에 따른 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논평에서 “도급은 생산 효율화를 위해 독일·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보편적 생산 방식”이라며 “생산 방식의 분업화·전문화·네트워크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작업의 연계성 등을 들어 불법 파견이라고 한다면 도급은 처음부터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이어 “도급을 불법 파견으로 판단하는 무리한 판결이 계속될 경우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