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첨단 기술 수출과 관련해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단행한 광범위한 통제 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통제 조치는 분명한 목표를 지닌다. 중국이 경제·군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러나 시비를 가리기에 앞서 먼저 전후 맥락부터 살펴봐야 한다.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태로 오랫동안 서방 측이 추진해온 세계화 정책의 취지는 상당 부분 퇴색했다. 글로벌 차원의 통합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무대에서 악한 일을 일삼는 일부 위험 인물들이 기세를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화의 결과인 긴밀한 상호 의존이 국제 무대의 악역들에게 종종 힘이 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애초 우리가 생각했던 세계화는 이런 게 아니었다. 보호무역주의 철폐와 파상적인 관세 축소에 바탕을 둔 전후 세계 무역 시스템은 교역이 평화를 촉진한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유럽의 산업을 하나로 묶어 회원국들 사이의 전쟁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목표 아래 1951년에 결성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모체다. 후일 독일은 ‘교역을 통한 변화’라는 독트린 아래 러시아 및 중국과의 경제적 연결 고리를 강화한다. 이 역시 세계 경제의 통합이 민주화와 법의 지배를 촉진한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기대는 어긋났고 예상은 빗나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잔인한 독재자가 다스리고 있고 중국은 정치적인 퇴화를 겪으면서 말썽 많은 이전의 1인 독재 체제로 돌아갔다. 세계화는 국가들 간의 화합을 강화하기보다 국제적 대립의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듯 보인다.
3년 전 국제 관계 전문가인 헨리 파렐과 에이브러햄 뉴먼이 발표한 ‘무기화된 상호 의존:글로벌 경제 네트워크가 조장한 국가의 물리력 행사’라는 논문은 미래를 꿰뚫어본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국가들이 자국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경제력을 행사하던 기존의 무역전쟁은 힘을 잃었다. 대신 요즘의 경제력은 지극히 중요한 재화와 용역, 금융과 정보에 다른 국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처럼 새로운 경제력은 대부분 서구, 특히 미국이 쥐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우크라이나전의 가장 큰 이변은 개전 초기 미국과 미국의 우군들이 중요한 산업 용품 및 자본재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러시아의 수입이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나 경제 제재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 수행 능력에 결정적 타격을 줬다.
여기서 다시 세계화와 국가 안보에 관한 ‘바이든 독트린’이라 할 수 있는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로 돌아가자. 지난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인 캐서린 타이는 국가안보를 산업 정책의 부분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놀랄 만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국가가 직접 주도하는 중국의 산업 정책’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무역 자유화에 따른 효율성 향상이 우리의 공급망을 더욱 약화시키고 의존도 위험을 심화시킨 대가로 주어져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같은 날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겨냥한 새로운 수출 통제 정책을 발표했다. 느닷없이 미국이 세계화에 역행하는 강경 노선을 취한 셈이다.
필자는 이 같은 정책 변화의 원인을 짚어줄 내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첨단 기술 수출 통제 정책은 글로벌한 차원의 위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경제력을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미국의 고양된 자신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쪽에서 보면 교역은 변화를 초래하지 않았다. 푸틴의 러시아는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됐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웃 국가를 정복하기 위해 도발을 감행하면서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은 자멸적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가능성이 시진핑의 침공 시도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전쟁 초반 러시아 제재에 성공한 일은 서방국들, 특히 미국이 가진 막강한 경제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첨단 기술 수출 통제 정책은 앞서 중국 기업인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와 일맥상통한다. 당시 중국은 반격에 나서지 못했다. 이 같은 중국의 태도는 첨단 기술 분야에 관한 한 미국이 여전히 ‘확전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이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극히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깃털만 잔뜩 부풀린 허세가 아니라 진정한 ‘강함(toughness)’으로 과감히 돌아선 바이든 행정부를 비난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