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AI 대부의 조언 [정혜진의 Whynot 실리콘밸리]

국가 차원의 AI 정책 로드맵 짤 때
목표 중심형 프로젝트는 성과 한계
연구자 호기심 이끌 영역 마련 필요
정부 지원도 지속돼야 3대강국 도약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 토론토=정혜진 특파원


“호기심이 이끄는 연구를 하는 기초 연구자들을 발굴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커다란 발전(breakthrough)을 일으킬 수 있는 핵심 지점입니다.”


올 7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딥러닝의 ‘구루’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했을 당시 캐나다가 인공지능(AI) 강국이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주저 없이 ‘호기심이 이끄는 연구’와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을 꼽았다. 많은 이들이 캐나다가 국가 차원에서 AI 강국을 염두에 두고 집중 육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주제에 관계없이 연구자의 호기심을 존중하다 보니 여러 씨앗이 태동했고 그 중 AI 연구가 꽃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힌턴 교수 자신이 그 결실이다. ‘기호주의 인공지능(Symbolic AI)’ 접근이 주류였던 학계에서 힌턴 교수는 오랫동안 비주류였다. ‘AI도 인간의 뇌처럼 학습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 하나로 힌턴 교수는 모두가 택하는 접근 방식 대신 심층신경망 기반의 딥러닝이라는 한 우물을 파며 30년을 넘게 버텼다. 영국 태생인 그가 미국을 거쳐 캐나다에 정착한 것도 그의 연구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캐나다 토론토를 찾아 힌턴 교수를 만났다. 윤 대통령은 캐나다의 성공 요인을 듣고 한국 기술력을 도약시킬 방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그를 찾았다고 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브리핑을 통해 "캐나다 정부가 AI 암흑기에도 이 분야의 연구를 꾸준히 지원해 딥러닝 기술 개발을 이끌 수 있었다”며 “스탠퍼드 AI지수에 따르면 한국 경쟁력이 6위인데 향후 3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22일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토론토대에서 윤석열(가운데) 대통령이 간담회 이후 제프리 힌턴(왼쪽 다섯번째) 토론토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캐나다를 다녀온 지 한 달 만인 28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첫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12대 국가기술 중 하나로 AI를 선정하고 국내 AI 시장을 5년 내 세 배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이 공개됐다. 반가운 소식이다. 국가 차원에서 AI 연구를 장려하고 기초 연구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 규모와 추진 방향도 제시했다. 세부 로드맵은 12월에 공개될 예정이지만 유독 눈길을 끈 대목이 있다. AI를 활용해 과학이나 산업계의 난제를 해결하는 ‘AI 난제 해결 메가 프로젝트’에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농산물 신품종 개발 기간 단축, 고성능 배터리 소재(전해질) 개발 등의 과제를 AI를 통해 해결하는 프로젝트다.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는 동시에 진행될 수도, 기초 연구가 선행돼 응용 연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연구자의 호기심이 동력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힌턴 교수는 딥러닝을 연구할 당시 딥러닝이 이렇게 활용될지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AI를 인간 뇌처럼 학습시킬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이끌렸을 뿐이다. 그가 집대성한 딥러닝은 병 진단과 해양 생물 보호를 위한 불법 포획 감지, 농작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맞춤 비료 지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이는 당시에 예상치 못했던 결과물이다. 현재 힌턴 교수는 딥러닝 모델에 큰 성취를 안겨준 백프로퍼게이션 알고리즘의 대안을 찾는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역시 뇌를 더 이해하고 싶다는 호기심 때문이다.


정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힌턴 교수는 한 가지를 당부했다. 그는 “정치권이나 정책 담당자로서는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훨씬 쉽지만, 쉬운 길로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목표 중심형 프로젝트는 결국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계했다. 그는 일본 제5세대 컴퓨터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다. 1982년 일본 정부가 1000억 엔 규모로 야심 차게 출범시킨 초현대적 중앙처리장치(CPU) 프로젝트는 실패로 귀결됐다. 정부의 구체적인 목표만큼이나 연구자들이 호기심을 발휘할 영역을 남겨두도록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힌턴 교수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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