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set, go!’…‘국대 3년’ 조우영의 시간


생산적인 고민은 성장의 촉매다. 국가대표 남자 골퍼 조우영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골프 기술에 대한 고민, 경기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고민…. 깊은 고민의 끝은 늘 성장이었다.


‘조우영’이라는 이름 석 자는 국내 엘리트 아마추어를 대표하는 블루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런데도 조우영은 여전히 고민이 많다. 프로 무대 도전이라는 큰 선택도 누구보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그가 이번에 보여줄 성장폭은 어느 정도일까. 그를 주목하는 골프계에는 또 어떤 바람을 몰고 올까. “또 보고 싶은 선수, 계속 찾게 되는 선수가 되겠다”는 조우영의 얘기를 들어봤다.



LIV가 투자한 대회서 버디만 10개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LIV 골프 얘기부터 해야 했다. 정확히는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이 후원하는 LIV, 그 LIV가 투자한 아시안 투어 얘기다. 아시안 투어는 그동안 그렇게 경쟁력 있는 무대는 아니었지만 LIV가 올해부터 10년 간 3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게 아시안 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이고 그 시리즈 중 하나가 8월 제주에서 열렸다.


조우영은 인터내셔널 시리즈 제주 대회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컷 통과 기준인 이븐파를 1언더파로 겨우 넘어섰던 그는 3라운드에 버디만 10개를 쏟아부어 61타를 치면서 선두에 1타 뒤진 공동 2위로 점프했다.


“어떤 대회든 뭔가 외국 느낌이 나는 코스에서 치면 신기하게 성적이 잘 나오더라고요. 아시안 투어 대회라 외국 투어 느낌도 나고 해서 오히려 부담이 없었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늘 보기는 안 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왠지 잘 칠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어떤 날보다 편안한 느낌이었어요.”


조우영은 올해 프로 대회에 나가면 1~2타가 모자라 아깝게 컷 탈락하는 일이 많았다. 인터내셔널 제주에서는 반대로 1타 여유를 갖고 컷을 통과했고 이렇게 고비를 넘기자 이른바 ‘포텐’이 폭발했다.




조우영은 최종 4라운드를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라운드’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실제로 그랬다. 프로 턴과 아마추어 신분 유지 사이에서 고민 중이던 때였다. 우승하면 아시안 투어 시드를 자동 획득해 자연스럽게 고민을 지울 수 있었다. 조우영은 “아시안 투어를 가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 부모님의 고생을 덜 수 있고 진로에 대한 고민도 단순해지는 거니까 당연히 욕심이 났다”며 “과도한 욕심이 안 좋은 스코어로 이어질까 봐 마음을 최대한 편하게 먹고 쳤는데 너무 편한 마음으로 치고 욕심을 부리지 않아선지 생각했던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최종일 1타를 잃었지만 조우영은 그래도 우승자와 5타 차이의 10언더파 공동 7위에 오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마추어 선수에게 허락되는 최대 상금인 1000달러도 받았다.



친구 따라 배운 골프로 300야드 초정밀 샷 ‘펑펑’


“그 친구요? 지금 아마 공부 열심히 하고 있겠죠?” 보통 부모 손에 이끌려 시작하는 골프가 많지만 조우영의 골프는 친구와의 놀이로부터 시작됐다. “평촌에 큰 상가가 있었는데 거기 3층 영어 학원을 ‘절친’이랑 같이 다녔어요. 근데 그 친구가 수업 끝나면 항상 4층으로 올라가서 골프 학원을 가더라고요. 엄청 재밌다고 그러기에 놀러 가봤는데 정말로 재밌는 거예요. 친구들끼리 퍼트 누가 먼저 넣나 게임 해서 상 받고 이런 게 마냥 좋았죠.” 그렇게 재미를 키워가다 드라이버도 들게 됐고 그물에 붙어있는 타깃을 맞힐 때 나는 ‘퍽’소리가 좋아서 결국 엄마한테 말했다. “저 골프 힐래요.”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타이거 우즈의 경기에 푹 빠지기 시작한 4학년부터는 선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키 180㎝, 몸무게 80㎏ 정도인 조우영은 편하게 300야드 드라이버 샷을 날린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장타를 목표 지점 10m 안쪽에 떨어뜨리는 초정밀 타격 능력을 갖췄다는 것. 인터내셔널 제주 때는 페어웨이 안착률이 90% 이상이었다. 조우영은 “드라이버 때문에 큰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고 그때 정말 많이 연습했다. 그 과정에서 ‘이렇게 치면 이런 식으로 가고 저렇게 치면 또 다른 식으로 가는구나’하는 게 몸에 딱 박혔다”며 “어드레스 들어가면 뭔가 딱 느낌이 온다. 그립의 악력에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 느낌이 들면 십중팔구 잘 날아간다”고 했다.



치앙마이에서 보낸 45일


조우영이 말한 고생은 고교 1학년에서 2학년 올라가던 시기에 겪은 일들을 말한다. “드라이버가 정말 안 되긴 했지만 입스(샷 실패에 대한 불안 증세)라고 하긴 좀 그렇고…. 골프가 너무 싫었어요.”


당시는 그렇게 주목 받는 선수는 아니었고 조우영 본인의 말에 따르면 ‘우영이? 걔 알긴 알지’ 정도의 위치였다. 그런데 드라이버만 잡으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티잉 구역에 미리 공을 몇 개 놔두고 샷 준비를 할 정도로 불안감이 크던 때였다. 샷이 안 되는 것보다 ‘쟤 갑자기 왜 저러나’ 싶은 사람들의 시선이 더 두렵고 싫었다.


말을 안 듣던 드라이버 샷에 더해 급기야 아이언 샷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완벽하게 쳐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슬럼프였다.


벼랑에 몰린 기분이던 조우영은 고3으로 올라가는 겨울에 엄마와 단둘이 태국 치앙마이로 떠났다. 전지 훈련은 코치의 인도로 아카데미 등록 선수들이 함께 가는 게 보통인데 조우영은 사실상 혼자 떠났다. ‘이래도 안 되면 끝’이라는 각오로 띄운 나름의 승부수였고 경비를 아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거기서 조우영은 45일 중 43일을 훈련했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새벽 5시에 기상해 혼자 18홀 라운드를 돌고 오전 9시 30분부터 연습하고 점심 식사 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샷·퍼트 연습, 밤 9시까지는 웨이트 트레이닝하는 생활로 쳇바퀴를 돌렸다. 몸은 고됐지만 “한국 사람이 저밖에 없어 남들 눈치 안 보고 마음껏 골프 치고 운동했다”고 한다. 마침 해외 대회에서 안면이 있던 태국 코치를 그곳에서 만나 훈련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태국 선수도 사귀었다.


조우영은 “집안 사정이 어떤지 아니까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하면 죄 짓는 느낌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리 부족할 것 없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조우영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외아들 뒷바라지에 나선 엄마한테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45일의 태국 생활을 마무리하며 그런 엄마에게 조우영은 슬그머니 물었다. “저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엄마?” “진짜 열심히 했다, 아들”이라는 엄마의 말이 아들은 우승한 것만큼이나 기뻤다.



버벅대도 앞으로, 또 앞으로


몸무게 86㎏이던 조우영은 태국 전훈 뒤 76㎏의 날렵한 몸으로 변했다. “밥 다 잘 챙겨 먹고 했는데도 10㎏이 빠져있더라”는 설명. 이 사이 샷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도 조금씩 사라졌다. 조우영의 한 라운드 최고 기록인 12언더파도 이 무렵에 나왔다. 태국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60타를 쳤다.


그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홀인원 행운까지 더해 2위에 올라 2020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조우영은 “샷 불안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태국에서 쌓은 연습량 덕에 그때그때 감으로 맞춰치는 요령이 생겼다”고 했다.


2020년 8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GS칼텍스 매경오픈에 국가대표 자격으로 나가 쟁쟁한 1부 투어 선배들 틈에서 공동 13위에 올랐고 9월에는 국내 최고 권위의 아마추어 대회인 허정구배마저 제패했다. 마지막 날 이글 2개로 역전 우승하면서 화제를 낳았던 그 대회다. 이어 10월 KPGA 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공동 17위를 기록해 당장 1부를 뛰어도 손색 없는 실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국가대표 선발전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밤새 한숨도 못 잘 만큼 조우영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여전히 부족했다. 하지만 프로 대회 경험이 쌓이면서 확실히 달라졌다. “저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했던 것 같아요. 조금만 실수가 나와도 저를 막 나무라고…. 요즘은 ‘뭐, 이 정도면 괜찮네’ 이런 마인드로 접근하는 데 꽤 익숙해졌어요.” 조우영은 “국가대표를 3년 했는데 어찌 됐든 대표 자격을 지켜내고 성적도 내고 하니까 ‘버벅대면서 최선에 다가가는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겠다’ 이렇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어렵게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따냈지만 대회가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한동안 허탈감에 빠졌던 조우영은 오랜 꿈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진출을 목표로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일단 KPGA 투어와 아시안 투어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 해외 대회에서 사귄 외국 친구들과 꾸준히 연락하는 한편 미국 TV 프로그램과 PGA 투어 영상들을 즐겨보면서 영어 공부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안 돼도 포기하지 않고 잘 된다고 자만하지 않는” KPGA 투어의 박상현, 서요섭 선배가 롤모델이라는 조우영은 “올해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김민규도 친구지만 좋은 자극제”라고 했다.


KPGA 스릭슨(2부) 투어에도 종종 나간 조우영은 “거기 가보니 저는 중학교에서 이제 막 고등학교에 올라간 아이나 마찬가지더라. 사람들이 왜 프로로 빨리 넘어오라고 하는지도 알겠더라”며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그렇게 하나씩 쌓아가면서 스스로 단단해졌다고 느낄 때가 오면 그때 미국 무대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선수로서 어떤 인상을 주고 싶으냐는 물음에 조우영은 “거기에 대해서 진짜 고민 많이 했다”며 웃었다. “음…, 카리스마 있는 선수, 또 보고 싶게 만드는 선수요. 우즈 보면 압도돼서 자연스럽게 또 보고 싶잖아요. 그렇게 계속 찾게 되는 선수로 자리 잡고 싶습니다.”



PROFILE


출생: 2001년 | 골프 입문: 2011년


주요 경력:


2019년 2020 국가대표 선발전 2위


2020년 송암배·허정구배 우승, KPGA GS칼텍스 매경오픈 공동 13위


2021년 한국오픈 공동 21위, 신한동해오픈 공동 36위, 亞퍼시픽 아마추어 공동 3위


2022년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 공동 1위, 亞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 제주 공동 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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