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롯데그룹이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를 위해 3000억 원 가량을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강조해온 모빌리티 부문 강화를 위해 양 사가 ‘동맹’을 맺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롯데그룹은 이르면 이달 중 ‘전기차 초고속 충전 인프라스트럭처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계약을 체결한다. 이번 계약에는 KB자산운용도 참여한다. 이들 3사는 신설하는 합작법인에 총 3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하고 최종 투자 규모를 조율 중이다.
3사는 SPC를 통해 전기차 초고속 충전기를 충전 사업자에 임대하는 새로운 인프라 사업 모델을 개발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규 충전 사업자가 임대 사업 모델을 활용하면 초기 비용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며 “단기간 내 초고속 충전 인프라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2025년까지 전국 주요 도심에 초고속 충전기 5000기가 설치될 계획이다. 롯데가 인수한 전기차 충전기 제조 기업 중앙제어는 충전기 공급의 핵심 사업자로 참여한다. 롯데그룹의 전국 주요 유통 시설은 물론 현대차그룹의 영업 지점, 서비스 센터에도 충전기가 들어서게 된다.
현대차그룹과 롯데그룹의 이번 협력은 국내 충전 인프라 확대에 큰 발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전체 전기차 충전소는 약 15만 곳인 반면 전기차 등록 대수는 35만 대 수준에 달한다. 더구나 충전 속도가 느린 완속 충전소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완속 충전기로는 전기차를 충전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린다”면서 “전기차 성능이 개선되더라도 급속 충전기가 확산되지 않으면 전기차 보급 확산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과 롯데그룹은 이번 투자를 통해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는 전기차 충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복안이다. SK·LG·GS·한화·LS 등 다른 주요 그룹도 충전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충전기 생산 기업 시그넷이브이를 사들였으며 LG그룹과 GS그룹 또한 애플망고를 올해 공동 인수한 바 있다.
하지만 해외에 비해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친환경차 보급이 빨랐던 유럽에서는 일찍이 BMW, 다임러, 폭스바겐 등 현지 주요 완성차 업체가 투자한 아이오니티가 유럽 19개국에서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선 폭스바겐 산하 일렉트리파이아메리카가 현지 전역에 1800개의 급속 충전기를 운영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프리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충전 시장 규모는 2020년 149억 달러(약 21조 원)에서 2027년 1154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충전 사업이 당장 수익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니지만 성장성을 고려하면 미래의 정유 사업이나 마찬가지"라며 “초기 시장 단계에서 얼마나 인프라를 확장하는지가 패권을 잡는 키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