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폐막하는 부산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부산까지 간 김에 부산시립미술관에 들르려 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 특별전이 이곳 미술관 내 ‘이우환 공간’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9월 하순에 개막하려던 전시가 태풍 때문에 지연된다고는 들었으나 지금까지 열리지 않고 있을 줄은 몰랐다. 미술관이 올해 초 주요한 예정 전시로 소개했고 전시에 맞춰 작가도 내한할 예정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알아보니 9월 초 부산 일대를 강타한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미술관에 비가 샜다고 한다. 설치를 반 이상 진행하던 작가 측은 작품 손상을 우려해 철수를 결정했다. 미술관은 9월 20일 자 ‘새소식’이라는 이름의 공지 창을 통해 “무라카미 다카시 전시와 관련해 태풍의 영향으로 전시장 조성 공사가 지연돼 불가피하게 전시 일정을 변경하고자 한다. 전시 기간이 확정되는 대로 재공지하겠다”고 안내했다. 4일 현재 조회수는 271이다. 인기 작가 다카시의 전시를 보려던 사람 중에 기자처럼 헛걸음한 이는 없기를 바란다. 미술관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었을까.
공립 미술관의 공지 의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중섭 그림을 거꾸로 걸었던 ‘사건’이 그 단초가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8월 12일에 개막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 출품된 그림 한 점이 2개월 가까이 ‘거꾸로’ 걸려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그림을 뒤집어 다시 걸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중섭의 1954년작으로 알려진 ‘아버지와 두 아들’이라는 작품인데 이중섭과 그의 아들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둥글게 배치된 작품이다.
미술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그림의 위아래가 바뀌어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미 이 작품은 1986년 중앙일보사 주최로 호암갤러리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위아래가 제대로였다. 늦게나마 문제를 인식한 미술관 측은 자문회의를 진행했고 그 결과 그림을 다시 걸었다. 그림을 뒤집어 놓고 제작한 전시 도록도 새로 제작하기로 했다.
씁쓸한 대목은 이를 공지하지 않고 은근슬쩍 넘기려 한 미술관의 태도다. 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언론을 ‘전시 홍보의 도구’로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소통의 창구로 활용할 수는 없었을까. 길게 줄 서서 기다리다 입장해 작품을 대하는 숱한 관객들도 그림이 거꾸로 걸렸던 것인지, 다시금 바로잡아 건 것인지 정도를 ‘알 권리’는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적어도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공립 미술관이라면 말이다.
미술관 측의 항변이 기막혔다. 이중섭이 원형 구도를 즐겨 사용했기 때문에 위아래 구분이 모호할 수 있다고 했더랬다. 근대미술 전문가인 관장의 체면치레를 위한 변명이었다면 구차하다. 이미 이 그림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2016년부터 매년 3억 원씩 3년간 예산을 들여 제작한 전작 도록 중 이중섭 작품 전수조사 목록에 버젓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아래가 분명하다는 뜻이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기증받을 때부터 액자의 고리 방향이 잘못돼 있었다는 미술관 측 주장도 구차하게 들릴 뿐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몬드리안의 추상화 한 점은 1945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전시 때부터 무려 77년간 뒤집힌 이미지로 전시됐다는 것이 최근에 알려지기도 했다. 문제는 실수를 바로잡는 이의 태도다. 홍보에 적극적이라면 치부도 소통을 통해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립 미술관의 의무이며 그것이 ‘예술적’ 해법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