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이들을 잇다’
최근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에 나타나고 있는 큰 변화입니다. 전문 창작자들이 쓰는 툴로 인식됐던 어도비의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해 어도비의 제품들이 친근하게 이용자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창작자 협업툴 ‘피그마(Figma)’를 무려 200억 달러(약 28조원)에 인수하겠다고 통 큰 베팅을 한 어도비가 피그마의 철학을 어도비 제품에도 녹여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 달 18~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씨어터에서 열린 ‘어도비 맥스 2022’에서 소개된 많은 기능 중에 이 같은 철학을 담은 기능이 '쉐어 포 리뷰' 기능입니다. 영상은 사실 창작자 혼자의 작업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피드백을 거쳐서 완성되는 엄연한 협업물인데요. 하지만 기존에는 협업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편집자 입장에서는 이미 편집을 하면서 수백번 이상 본 파일 전체를 이해당사자가 올 때마다 다시 보면서 피드백을 받아 적고 이를 반영하는 것 또한 영상 편집 만큼 큰 시간과 노력이 쓰였습니다. 이랬던 길고 지난한 과정을 동료에게 파일과 리소스를 통째로 전송하지 않고도 리뷰용 링크를 보내주면 받은 사람들이 피드백을 달고 좌표를 찍을 수 있게한 게 어도비의 새로운 기능입니다. 이를 테면 파일 3분20초쯤에 있는 인물 등장 부분이 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피드백을 남기면 해당 부분에 좌표가 띄워지고 이 의견을 남긴 사람의 얼굴 아이콘이 뜨는 건데요. 그러면 바로 그 지점에 들어가서 작업을 한 뒤 완료를 누르면 일이 되도록 했습니다. 영상 편집이나 사진 보정 작업, 3D 모델링 작업까지 구글 문서처럼 쉽게 협업이 가능하게 만든 셈인데요. 스콧 벨스키 어도비 최고제품책임자(CPO)는 “작업자의 등 뒤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던 관행이 사라지고 원격으로도 업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이 같은 기능이 만들어올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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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능 하나의 변화 같지만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2012년 서비스를 시작한 피그마는 디자이너가 아닌 이들이 디자이너와 소통을 하기에 무엇보다 쉬운 툴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어 지난해 내놓은 화이트보드 협업툴 피그잼으로 그 진가를 증명했는데요. 시안을 그대로 피그잼에 옮겨올 수 있어서 이를 가지고 피드백과 소통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하나의 강점은 피그마 커뮤니티로, 이곳에는 이용자들이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플로우 차트, 브레인스토밍 등의 템플릿 등 2차 창작물을 활발하게 공유하는 게 특징입니다. 이를 활용해 디자이너가 아닌 이들도 디자이너와 같은 선상에서 소통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존에 어도비에서 약했던 부분을 해결한 것이죠. 사실 이번 행사에서도 어도비가 앞으로의 비전으로 강조한 게 협력적 창의성(Collaborative Creativity)인데요. 결국 여럿이 함께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드백과 이를 반영하는 게 또 소통을 쉽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잖아요. 피그마에 툴에 그치지 않고 피그마의 이 같은 철학을 어도비의 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도비는 올 3분기 44억 3000만 달러의 매출을 내고 순이익은 11억3000만 달러를 기록해 이익률이 25%에 달합니다. 그럼에도 이익률이 30%를 웃돌던 때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누군가에게는 ‘잊혀진 공룡’ 이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이번 인수를 통해서 피그마의 철학을 수용하고 덩치 큰 어도비의 소프트웨어들도 조금 더 새로운 이용자에 맞게 가볍게 진화한다면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또 어도비는 1000만곳의 비영리 기관을 상대로 어도비 익스프레스를 무료로 배포한다고 합니다. 한국도 조만간 배포될 예정입니다. 장벽을 무너뜨린 어도비가 어디까지 이용자층을 확대하고 친근하게 다가갈지 상단의 영상을 통해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