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0·11월만 17차례 '압축도발'…"한미 대응 떠보며 핵실험 조율"

전례없는 초고강도 도발
킬체인 테스트·핵보유국 강조
과거 핵실험 직전과 패턴 비슷
더 강경한 공식입장 나올 가능성
남해안까지 ICBM 도발 우려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월 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해 기념 강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무력 도발 수위가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미국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쏘아 올렸다. 구형 스커드 미사일을 포함해 최소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30발 이상 발사하고 군용기 집단 비행까지 감행하며 한 주 동안 전례 없는 무력시위를 이어갔다. 북한은 10월 열세 차례, 11월 3일까지 두 차례 등 압축적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엄호 속에 신냉전 구도로 재편되는 국제 질서까지 재확인한 뒤 7차 핵실험 시점을 조율하겠다는 ‘다목적 카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담화 후 도발…‘핵보유국’ 수순 밟기=6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공화국 무력의 군사기술적 강세와 실전 능력을 각인시켜 국가 지위가 불가역전인 것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무력 도발을 바탕으로 핵보유국 지위가 불가역적이 됐다고 선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과거 핵실험 당시에도 똑같은 패턴을 보였다. 2016년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병진 노선을 ‘항구적 전략 노선’이라고 선언한 뒤 넉 달 후인 9월 5차 핵실험을 했다. 2017년 8월에는 “미국이 경거망동한다면 그 어떤 최후 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사할 것(공화국 정부 성명)”이라고 위협한 뒤 같은 해 9월 3일 6차 핵실험을 했다. 이번에도 한미 연합공중훈련(비질런트스톰)이 종료되는 전날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은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성 발언을 또 내놓았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6차 핵실험 직전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나왔다”며 “김 위원장과 군 당국자의 입에서 숱한 위협 발언과 담화가 나왔던 상황이 데자뷔처럼 재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전역에서 발사…‘킬체인’ 시험=북한이 이번 군사 도발을 북한 전역에서 감행했다는 점도 의도가 있는 행동으로 분석됐다. 한미 군 당국은 북한 핵·미사일을 선제 타격할 수 있는 한국형 3축 체계(킬체인)를 앞세워 북한의 군사 위협을 방어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이를 시험이라도 하듯 북한은 10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발의 미사일을 저고도로 발사해 우리 군의 탐지와 요격을 살폈다. 군사 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미사일을) 쏘는 원점이 북한 전역으로 분산됐다는 것도 굉장히 특이한 사항”이라며 “만약 (킬체인으로) 정밀 타격하면 북한을 다 정밀 타격할 거냐, 이렇게 거꾸로 반문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NLL 이남으로 넘어온 2일에는 우리 군이 맞대응으로 쏘아 올린 공대지 정밀유도무기가 발사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KF 16 전투기에서 스파이스 2000 유도폭탄도 본래 2발을 쏘려고 했지만 첫발 정상 발사 이후 두 번째 폭탄의 목표 설정 과정에 오류가 생겨 발사하지 못했다. 킬체인 오류를 북한에 고스란히 노출한 셈이다.


북한이 3일 밤 발사한 구형 스커드 미사일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무리하게 신형 미사일 무력시위를 벌여 재고가 바닥난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구형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해 실전 부대가 움직일 수밖에 없어 도발 징후는 더 심각해졌다는 전망이다.


◇중러 엄호에 안보리 무력화=물론 한미는 비질런트스톰을 하루 연장하는 동시에 미국 전략폭격기 B 1B ‘랜서’를 전개해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죽음의 백조’라고도 불리는 B 1B의 한반도 전개는 미국 측의 확장 억제 공약 이행 의지를 과시하는 동시에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화를 예고해 북한을 억제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보리는 힘을 쓰지 못한 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번 도발에도 4일(현지 시간) 열린 안보리 공개회의에서 중러는 북한 옹호로 일관했다. 북한으로서는 핵 능력을 최대치로 키우는 동시에 중국·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며 미국에 대응할 수 있는 국제 공조까지 받아낸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결국 북한은 오랫동안 준비해온 핵실험의 상황과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라며 “핵실험 전에 더 강경한 공식 입장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도 “신냉전 상황을 이용하는 한편 핵 선제 타격과 보복 공격을 받은 뒤 재래식 무력을 결합해 제2격 수행까지 보여준 것”이라며 “앞으로 핵실험뿐 아니라 제주도 남쪽 바다를 향해 ICBM 실험까지 감행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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