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을 비롯한 여러 산업에서 한국은 세계 최상위권에 올라와 있지만, 헬스케어 메디컬 산업에서는 중진국에 불과합니다. 시장 규모가 작으면 결국 아이디어 싸움인데요, 글로벌 시각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잘 선별해 초기부터 집중 투자하면 우물을 깨고 뛰쳐나올 수 있습니다."
30년간 다양한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의 리더로 활약하다 최근 스타트업 창업자로 변신한 이희열(사진) 벤처블릭(VentureBlick) 대표는 7일 서울경제와 만나 K-바이오에 전문화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머크, MSD를 거쳐 바이엘 헬스케어과 메드트로닉에서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을 역임한 그는 "한국은 아직 제대로 된(블록버스터) 신약 개발 경험이 없는 국가"라고 냉정하게 평가하면서도 "훌륭한 인재와 기술을 보유한 만큼 글로벌 시장에 통할 아이디어를 잘 성장시킬 수 있는 헬스케어 전문 투자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올 9월 설립된 벤처블릭은 전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헬스케어 펀딩 플랫폼이다. 이 대표는 헬스케어, 메디컬 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한 벤처캐피탈들이 기존 방식대로 투자하는 것으로 보고 아쉬워하다 직접 새 판을 짜기 위해 뛰어들었다.
이 대표는 "은퇴까지 남은 10년 간 어디에 에너지를 쏟을지 고민한 결과, 그동안 글로벌 시장에서 제약사와 의료기기 기업을 두루 경험한 노하우를 산업에 도움이 되는 곳이 쓰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금융 시장에서 자금 확보가 어려워 헬스케어 투자가 위축되고 있지만 정말 필요한 의료 기술과 아이디어는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만 해도 한국벤처캐피탈협회 기준 올 3분기 바이오·의료 업종 투자금은 8787억 원으로 전체 투자금의 16.3%를 차지해 4년 내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벤처블릭이 내세운 차별성은 바로 의사가 직접 참여하는 투자다. 이 대표가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창업 두 달 만에 본사 싱가포르는 물론 한국·미국·중국·호주에 지사를 설립했고, 연내 독일·인도·두바이에도 법인을 세울 예정이다. 전세계 각지에서 신청받은 초기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사업 계획을 벤처블릭의 글로벌 의사·의료진 풀에서 검토하고, 나아가 의사들이 1만 달러 단위로 직접 리드 투자하는 게 특징이자 가장 큰 강점이다. 현장 의료진이 필요로 한 기술을 콘텐츠화해 플랫폼에 올리면 전세계 투자사들이 검증된 스타트업에 펀딩하는 식이다.
이 대표는 "예를 들어 새로운 신약물질에 대해 순환기내과 의사들이 직접 유망하다고 평가해 투자하고, 의료 현장과 환자에 가장 도움이 되는 스타트업을 키우는 방식"이라며 "벤처블릭만이 확보할 수 있는 의료진 네트워크로 사업성 검증은 물론 스타트업 컨설팅도 이어가는 유일한 투자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표는 "지난달까지 벌써 전세계 17개국에서 120개 스타트업이 투자 신청을 했고 30여 개 기관이 향후 플랫폼 투자를 제안하고 있다"며 "11월 초기 검증을 거쳐 내년 1~2월 의사들의 선별과 투자 유치를 마치면 뒤이어 투자 플랫폼을 오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