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에틸렌 설비증설 '치킨게임' …韓, 공장가동률 80%까지 하향 [뒷북비즈]

<6·끝> 공급과잉에 수익성 악화된 석유화학
석화사 영업이익률 1년만에 17%→4%로 '뚝'
'3중고'에 석유화학 실적 급락
잇따른 글로벌 설비 증설 완공에 공급도 과잉
'주요수출국' 中 수요 급감…판가 연동도 안돼
고유가·고환율에 나프타 등 원자재 가격 급등
가동률 낮추고 고부가가치 신사업 투자로 대응


고유가에 글로벌 수요 위축으로 업황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글로벌 석유화학업체들이 시설 증설에 나서며 석유화학업계의 공급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공급이 증가하면 제품 가격이 떨어질수 밖에 없는 만큼 우리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지난해 호황기를 맞았던 석유화학업계는 이같은 다중악재의 영향으로 침체의 늪에 빠진 상황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분기별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2분기 16.9%에서 올 2분기 4.4%로 대폭 떨어졌다. 이에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며 버티기에 돌입하거나 신소재 등 신규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돌파구를 찾고 있는 모양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2025년까지 미국에서 대규모 에탄크래커(ECC)가 완공될 예정이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잇달아 발주됐던 미국의 ECC 플랜트 설비가 속속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ECC는 국내 석유화학업체의 나프타크래커(NCC)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다. 물론 이들 제품은 주로 멕시코·캐나다·브라질 등으로 수출되지만, 가격 경쟁력을 갖춘 미국산 제품이 시장에 출하되기 시작하면 국내 업체의 수익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몇년 전부터 NCC 신설 계획이 잇따라 세워졌고, 이 신규 설비들도 2020년부터 순차적으로 완공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이같은 글로벌 신규 증설 계획에 따라 올해 약 1200만톤, 내년 약 900만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설비가 완공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등에서 신규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다”며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석유화학 경기가 좋았고, 미국의 경우 트럼프 정부 당시 석유·가스 활성화 정책을 폈던 만큼 당시 공장들이 다수 착공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공급은 늘어나고 있는데 글로벌 수요는 대폭 줄어들면서 석유화학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의 수출 비중은 60%에 달한다. 그만큼 글로벌 경기 흐름에 민감하다는 의미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요인으로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꺾이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 제품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국내 석유화학 제품 수출의 40%는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불황 및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중국의 수요가 크게 줄었고, 이는 우리 기업의 손실로 이어졌다. 중국의 강력한 봉쇄 정책이 지속되는 한 아시아 지역의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단기간에 반등하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여기에 고유가·고환율로 인한 정제마진 감소로 수익성은 더 악화하는 상황이다. 석유화학 기업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가격)’는 이달 들어 평균 150 달러대(톤 당)를 기록했다. 손익분기점인 300달러를 한참 밑도는 수치다. 에틸렌 스프레드가 줄어든다는 것은 원료와 가공품의 가격 차이가 감소해 마진이 적어진다는 의미다. 앞선 8월에는 에틸렌 스프레드가 80달러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나프타를 비롯한 원료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고유가·고환율이다. 석유화학 산업은 매출 원가에서 원료 가격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국제유가와 환율에 따른 변동성이 크다. 올해 초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았을 뿐 아니라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석유화학 기업들이 원료 가격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서는 유가가 소폭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어 언제든 유가가 다시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가 저성장으로 가고 있고, 특히 우리나라 석유화학 제품의 주요 수출국이었던 중국의 상황이 좋지 않다”며 “원래 원재료인 나프타 등의 가격이 올라도 그만큼 제품 판매가도 함께 오르기 때문에 수익성이 나빠지지 않았는데, 글로벌 수요가 전체적으로 줄어들면서 제품을 만들어도 팔 데가 없어 제품 가격을 올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장을 운영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 속에서 석유화학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80%까지 낮추며 버티기에 나서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공장의 정기보수를 진행하며 생산을 멈췄다. 대한유화는 2019년 이후 3년 만에 대규모 정기보수를 결정했고, LG화학도 지난달 말부터 여수NCC 공장의 정기보수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석유화학 기업들은 고부가가치와 친환경 신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펼치며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전략도 펴고 있다. 최근 세계 4위 동박 제조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한 롯데케미칼이 대표적이다. 롯데케미칼은 이외에도 탄소포집과 화학적 재활용 등 친환경 사업 등에도 투자를 집행했다. 수소·배터리 소재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석유화학 사업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고 사업 다각화를 꾀하기 위해서다. LG화학도 이차전지 양극재와 분리막, 친환경 분야에, 한화솔루션도 모빌리티 소재 및 친환경 소재 등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정제마진 2년만에 최저…'횡재세' 불똥 우려까지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올렸던 국내 정유사들의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되고 있다. 국제 유가 하락과 달러화 강세에 정유사의 실적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정제마진이 2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며 3분기 실적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전세계적인 탄소중립 열풍 속 유럽연합(EU)이 에너지 업계에 본격적으로 횡재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업체들은 자칫 불똥이 튈까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셋째 주 기준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0달러를 기록했다.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료비나 수송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돈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2020년 9월 둘째 주에 기록한 -0.1달러 이후 최저 수준이다. 11월 첫째 주 기준 정제마진은 배럴당 4.6달러 수준으로 올라오긴 했지만 통상적으로 손익분기점으로 여기는 5달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6월 넷째주 정제마진이 배럴 당 29달러가 넘으며 호황을 누렸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하반기 실적에도 먹구름이 꼈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15.9% 증가한 12조3203억 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반기는 상반기의 절반 수준밖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3분기 실적을 발표한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영업이익은 전분기 대비 각각 69.8%, 70.3% 감소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으로 장기적인 시황도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횡재세 논란도 정유사에 큰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EU는 최근 발전사와 가스·석유 기업으로부터 횡재세 등으로 약 195조원을 거둘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치솟은 가스 가격으로 에너지 업계가 대규모 이익을 내자 초과이익 일부를 환수해 향후 소비자의 부담을 완화하는 데 활용하자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현재 국내에서도 정유사를 대상으로 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문제는 글로벌 에너지 산업구조와 국내 정유사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해외와 동일한 법안을 적용할 경우 국내 정유업계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에너지 업체는 원유를 직접 시추하고 되파는 구조인 반면 국내 정유사들은 가격 변동에 따라 원유를 사들이고 이를 가공해 되판다. 즉 원유 가격이 원가에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EU의 횡재세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설명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불과 2년전에 유가 하락으로 5조원대 적자가 났을 때 정부가 보조해 준 것도 아닌데 이익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도 않고 기업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전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 속에서 정유사들의 속내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각종 정책을 실시하는 가운데 작업 공정 상 탄소가 많이 배출될 수밖에 없는 정유사들은 이 같은 정책을 따라가기 위해선 사업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전통적인 정유 사업 대신 윤활기유,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비정유 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나섰다. 하지만 개별 기업들의 이 같은 노력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탄소 중립 사업에 대한 지원 없이는 관련 기술 개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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