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에 기반한 의료 패러다임 전환은 의료비 절감을 비롯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할 핵심 열쇠가 될 것입니다.”
백롱민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인공지능(AI)이 이끄는 디지털 헬스케어 혁명’을 주제로 열린 ‘제1회 서경 바이오메디컬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보건의료계의 선결 조건으로 ‘디지털 전환(DX·Digital Transformation)’을 꼽았다. 양질의 데이터와 이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 에코시스템의 삼박자가 갖춰져야만 혁신적인 수준의 의료비 절감이 가능하다는 것이 백 교수의 설명이다.
DX란 정보통신기술(ICT)과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 스마트 기기, 데이터 분석 기술, 매체 통신 기술 등과 의료 분야를 융합하는 기술로 디지털 헬스케어와 직결된다. 이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 위험 인자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건강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백 교수는 “적은 생산인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고령층의 의료 부담을 짊어지려면 지속 가능한 데이터 에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의료비를 절감하고 국민 건강을 증진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디지털 헬스케어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데이터 중심 혁신(Data-Driven Innovation)’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의료 현장에서 관찰하거나 측정한 사실 또는 값을 모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 디바이스, EMR,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이루는 핵심 도구를 이용,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숨겨진 의미를 찾고 활용 가능한 정보로 창출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의료 서비스 또는 의약품 사업 등을 인프라로 활용할 경우 헬스케어 분야 연관 산업 발전의 촉매로 삼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게 백 교수의 견해다.
백 교수는 이 같은 혁신을 통해 보건의료가 발전해야 할 방향을 ‘7P’로 규정했다. △예측(Prediction) △개인화(Personalizaion) △예방(Prevention) △정밀화(Precision) △참여(Participation) △공중(Public) △인구(Population) 등이 그것이다. 위험 그룹을 예측해 질병을 예방하고 조기 진단을 통해 빠르게 치료하며 최적화된 치료를 통해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효율을 증대시키는 것이 앞으로 보건의료계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그런 혁신을 해야 할까. 백 교수는 “기술적 진보와 문화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며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할 만한 토양이 충분히 갖춰졌다”며 “무엇보다 의료 서비스 제공자인 의료진과 수요자인 환자가 원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에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통해 한 명의 유전체를 해독하기까지 20년간 약 30억 달러를 투입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유전체를 해독하는 데 24시간이면 끝난다. 비용도 500달러 정도면 충분하다. 신약 개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성공률이 1000분의 1도 안 되는 신약 개발에 10~15년을 투자해야 했지만 이제는 AI 데이터 모델로 초기 단계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다. 심지어 아예 동물실험 없이 데이터 분석만으로 인간 임상 단계로 넘어가기도 한다. 실제 미국의 AI 신약 개발 회사 버지지노믹스는 오랜 기간 루게릭병 치료 개발의 걸림돌이었던 동물 모델 대신 AI를 통한 데이터 연구로 대체한 결과 인간 대상 임상 시험 진입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4년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백 교수는 “한국이 ‘아이를 제일 안 낳는 나라, 인구감소율이 가장 빠른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며 “반도체·자동차 등 기존 사업이 점차 약화돼가는 가운데 디지털 헬스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한다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