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추가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8월에 발효된 미국의 반도체과학법, 이른바 칩스(CHIPS) 법안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TSMC가 향후 몇 달 안에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피닉스는 앞서 2020년 TSMC가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을 밝힌 곳으로, 다음 달에 첫 생산장비 설치 기념식이 열릴 계획이다. 이 공장의 양산 시기가 2024년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TSMC가 인근에 공장을 더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TSMC는 신공장에서 3㎚(나노미터·10억분의 1m) 트랜지스터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투자 규모는 1공장에 투입됐던 금액과 비슷한 12억달러 수준으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TSMC 측은 WSJ에 아직 최종적으로 결정된 계획은 아니라면서도 애리조나주에 두 번째 반도체 공장을 짓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공장이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투자 계획에 대해 WSJ는 "미국이 첨단 제조업을 자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반도체 기업들에 거액의 보조금을 약속한 후에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미국 의회는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총 280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의 반도체산업지원법(CHIPS)을 통과시켰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제조 기능이 대만에 집중되는 것은 경제안보상 위험하다는 판단에서다. 법안 통과에 따라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뿐 아니라 내년부터는 보조금도 지급받을 수 있다. 미국이 내년에 책정한 시설 건립 지원금은 390억 달러에 달한다.
TSMC의 적극적인 투자엔 주요국 정부의 지원뿐 아니라 장기적인 수요 증가 판단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WSJ는 "단기적인 업계 침체에도 불구하고 TSMC의 경영진은 10년 후 자사의 전세계 매출이 1조 달러를 넘어서 현재의 2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막대한 투자 계획의 배경엔 이 같은 (경영진의)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