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원청·하청업체 간 거래에 반영하는 ‘납품단가연동제’를 정부와 국회가 최근 적극 추진하는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과 같은 고물가 시대에는 납품단가연동제가 소비자와 중소기업의 부담만 늘릴 수 있으니 제도를 신중히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전경련은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납품단가연동제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납품단가연동제는 시장경제의 핵심인 가격을 직접 규제해서 소비자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고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며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산업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인위적·강제적 법제화 보다는 납품단가연동제 실시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통해 납품단가연동계약을 자율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인숙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이론적으로 납품단가연동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고 비용 상승에 따른 이익 축소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통상 위탁기업이 수탁기업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한 만큼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시 수탁기업이 비용 인상 요인을 위탁기업에 떠넘길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조 교수는 수탁기업이 생산비 절감을 위한 경영 혁신에 소홀히 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그는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으로 비용이 상승한 기업은 최종재 가격을 인상할 수 밖에 없고 제품 수요 감소로 이익이 축소돼 경쟁력이 약화된다”며 “납품가격 결정은 사적계약 관계이기에 강제적으로 원자재 가격을 연동하는 해외 입법 사례를 찾기 어렵다. 미국, 독일 등에서는 정부 조달계약 등에 대한 가격조정을 권장하지만 법적으로 강제하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 “납품단가연동제가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계약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 일부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시행 중인 납품대금연동제 시범사업이 산업 현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뒤 관련 정책을 설계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병태 영산대 법학과 교수는 “납품단가연동제 법제화는 법률이 보장한 계약당사자의 대등한 법적 지위, 민사법상 계약자유의 원칙과 같은 계약의 일반원칙과 사적자치, 경제자유의 원칙, 과잉금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금지, 평등권 침해금지 등 헌법상 일반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계약당사자간 자율적인 문제해결이 우선돼야 한다. 위·수탁 계약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납품단가 연동제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또한 “납품단가연동제로 대기업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이를 중간재화로 사용하는 중소기업의 생산비용도 상승하게 된다”고 걱정했다. 조 실장은 “시장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제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재화로 대체될 것”이라며 “더욱이 소비자 가격 인상이 소비 감소와 경기 둔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고물가 시대에 매우 부적합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회상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납품단가연동제가 의무화되면 위탁사업자가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계약기간을 단축하거나 부품단가 자체를 낮추는 등 다른 거래조건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며 “가격 규제 보다는 거래당사자간 협의를 통해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수급사업자가 원자재 가격 변동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보험 등을 개발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양준석 카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납품가격의 공정성에 대한 평가, 중소기업의 판매처 다양화 방안 등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지난 9일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법안을 당론으로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르면 10일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달 8일 납품단가연동제 관련 법안 2건을 당론으로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