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으로 도시락이 큰 인기를 끌며 편의점들이 ‘밥’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도시락은 메뉴 구성이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밥 맛에 따라 선호도가 극명히 나뉘기 때문이다. 이에 편의점 업계에서는 일본까지 건너가 자격증을 취득한 밥 전문가인 ‘밥 소믈리에’ 보유자를 잇따라 영입하며 밥에 힘을 주고 있다.
12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연초 이후 CU 도시락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가 늘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 매출 신장률이 1.6%, 6.6%였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인플레이션에 외식 물가마저 껑충 치솟자 비교적 가성비가 뛰어난 편의점 간편식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재택 근무 감소와 물가 상승이 겹치며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 현상에 편의점 도시락이 수혜를 입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편의점들은 도시락 경쟁력의 기본인 밥 맛을 위해 밥 소믈리에를 잇따라 영입하고 있다. 밥 소믈리에는 밥 짓는 기술과 영양학적인 지식을 갖춘 밥 전문가를 뜻한다. 이 자격증은 지난 2006년부터 일본취밥협회, 일본곡물검정협회 주최로 매년 1회 씩 쌀의 산지, 품종, 영양, 취반 등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시험을 통과해야 취득이 가능하다. 시험 전 일본취반협회의 집체 교육을 받은 뒤 필기와 실기 시험을 치르게 된다.
실기 시험은 4종류의 밥이 일정량 접시에 담겨 나오면 기준이 되는 밥 1종류와 샘플로 나온 3종류의 밥을 서로 비교해 향, 외관, 맛, 점도, 경도 등에 대한 전체적인 관능 평가를 하는 것으로 매우 난이도가 높다. 이 때문에 국내에 밥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70여명으로 대부분의 인원이 즉석밥 제조 회사 등에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편의점들은 도시락 차별화를 위해 가장 기본인 밥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밥 소믈리에 영입을 늘리고 있다. CU는 밥 소믈리에 자격증을 가진 직원이 총 5명으로 업계에서 가장 많다. 이들은 상품본부 소속으로 전국의 6개 제조 시설에서 근무하며 쌀의 구매부터 밥의 제조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있다.
CU의 밥 소믈리에는 좋은 품종의 쌀을 고르는 것부터 취반 과정의 세미, 침지, 가열, 뜸, 보관 등의 전 밥 짓는 전 과정에서 관련 지식을 활용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쌀 품평회 때마다 다양한 쌀을 직접 공수해 와 수십 종의 밥맛을 보다 보니 습관처럼 평소에도 맨밥을 간식으로 먹을 정도다.
이렇게 탄생한 CU의 백종원 도시락 시리즈는 ‘편도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100여 종이 넘는 상품이 출시됐으며, 누적판매량은 3억개를 상회했다. 이는 2000만 명 수준인 서울 시민이 한 달 동안 매일 도시락을 먹은 양과 같다.
세븐일레븐은 지난 2019년 편의점 업계 최초로 밥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한 김하영MD가 도시락을 전담하고 있다. 자격증 보유자가 식품 생산·개발팀에 속해있는 타사와는 달리 편의점 MD직군 소속인 것은 세븐일레븐이 유일하다.
세븐일레븐에서 출시하고 있는 모든 미반 상품은 세븐일레븐 MD와 제조 공장, 밥 소믈리에의 공동 협업을 통해 탄생하고 있다. 밥 소믈리에가 미반 제품 개발 전 과정에 참여하는 만큼 그 역할이 상당히 광범위하다. 품종 선택부터 최종 상품화 및 사후 모니터링까지 책임지고 있다.
밥 소믈리에는 제품에 사용되는 쌀 품종을 가장 중요하게 선택한다. 원료가 좋아야 기본적인 맛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에 밥 소믈리에는 품종 선택에 가장 중점을 둘 뿐만 아니라 최상의 품질 유지를 위해 입고부터 보관 관리까지 세심하게 챙긴다.
제품 제조단계에서도 밥 소믈리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밥 소믈리에가 쌀 씻기부터 취반, 진공 냉각까지 전 과정을 관리 감독한다. 특히 밥 소믈리에의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상품화돼 전국 소비자들에게 선보여진 이후에도 계속된다. 전국 현장을 직접 방문해 진열된 상품들에 대한 식미값을 평가, 안전하게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지 사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GS리테일(007070)의 경우 자회사인 간편식 공장 후레쉬서브에 밥 소믈리에 자격증 보유자가 1명 근무 중이다. 밥 소믈리에는 쌀, 물, 온도 변화 등에 따른 밥의 상태를 체크하고 메뉴마다 최적화를 설계하거나 품질 측면에서 좋은 쌀을 고르고, 만들어진 상품의 품질 검사 등을 맡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락의 기본인 밥이 맛있으면 고객들의 만족도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며 "전문 인력 운영 외에도 간편 식품 제조 시설 투자, 상품 연구 등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