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시장이 고금리발(發) 충격에 얼어붙고 있다. 올 9월 서울의 주택 거래량은 200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주 서울과 과천·성남·하남·광명 등 수도권 5곳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을 부동산 규제 지역에서 해제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벌써 세 번째 해제 조치다. 정부는 주택 시장의 경착륙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규제를 풀어도 찔끔 풀고 만다”면서 “눈치를 너무 본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정부의 규제 완화 속도가 더딘 데 대해 “시장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부동산 정책 분야의 대가로 꼽히는 손 교수는 2018년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분석한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는 책을 썼다.
-‘거래 절벽’ 현상이 심각해 주택 시장이 경착륙할 우려가 있는데.
△지금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던 집값이 교정되는 과정이다. 이제 막 고금리발 충격이 시작돼 장기 전망이 다소 무의미하지만 내년 하반기까지는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어느 수준이 경착륙인지 규정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평균적인 집값 하락이 누구에게는 연착륙이지만 누구에게는 경착륙이 된다는 점이다. 수도권 외곽의 집값 하락 폭은 상대적으로 클 것이다. ‘패닉 바잉(공황 구매)’한 젊은 세대의 충격과 고통도 무척 클 것이다. 경기가 확 꺾이면 취약층부터 고통을 받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서울 가구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 발언이 논란이다. ‘지금은 18배쯤 되는데 문재인 정부 이전의 10~12배 정도 돼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집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취지로 이해되지만 너무 나갔다. 소득이 올라가고 집값이 싸져 PIR이 떨어지면 좋은 일이겠지만 소득이 그대로인 채 집값만 떨어지면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10~12배가 적정 수준이라면 지금보다 40% 하락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국이 의도적으로 집값을 떨어뜨리기도 어렵겠지만 실제 그렇게 되면 더 큰 일이다. 주무 장관이 할 말은 못 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을 장만한 젊은이들이 지금 얼마나 노심초사하겠는가.
-과거에는 ‘하우스푸어(집을 가진 빈곤층)’가 있었다면 지금은 ‘영끌푸어’가 있다고 한다.
△앞으로 점점 충격이 커질 것이다. 지금은 별안간 뒤통수를 맞아 정신이 없는 상태이지만 곧 피가 나는 사실을 깨닫고 지혈해야 할 처지가 된다. 내년부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아 걱정스럽다.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이슈로 부상한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 하우스푸어 대책을 내놓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당시 하우스푸어 문제는 시장 정상화로 집값이 2014년 말부터 점진적으로 오르면서 비로소 해결됐다.
-정부가 구제한다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을 텐데.
△전례가 있는 데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다면 정부가 수수방관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가 젊은 층의 패닉 바잉을 촉발한 측면도 있다. 젊은 세대가 이때처럼 주택 매수에 나선 적이 없었다.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연착륙을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지난주 정부가 부동산 규제 지역을 대거 해제했다.
△정부의 규제 완화 행보가 너무 조심스럽다. 현재 물가와 집값 동향을 보면 서울도 규제 지역으로 남겨둘 이유가 없다. 시장 상황이 불투명하니 정부는 일단 묶어두겠다는 심산인데, 국민을 이렇게 불편하게 할 근거는 없다.
-집값이 다시 불안해질 우려가 있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집값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으니 그냥 불편을 참고 살라는 게 말이 되는가. 규제 지역을 해제한다고 집값을 다시 자극할지 의문이다.
-규제 지역은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지역마다 규제 내용도 다르다.
△집값이 오르면 정부가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불필요한 규제를 너무 많이 늘렸다. 재당첨 제한 기간을 10년(투기과열지구)과 7년(조정대상지역)으로 규정해 차이를 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매 제한과 대출 규제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런 규제가 집값을 안정시켰는지는 의문스럽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핀셋 규제’라는 말을 흔히 썼다. 이 말을 듣고 ‘또 실패하겠군’이라고 생각했다. 부동산 시장은 지역, 유형, 계약 형태 별로 모두 얽혀 있어 어느 한 시장에만 영향을 주는 규제란 있을 수 없다. ‘풍선 효과’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어떻게 손질해야 하나.
△집값이 폭등하면 공급을 곧바로 늘릴 수 없으므로 정부 대응책이 마땅찮다. 집값이 급등하지 않도록 5년 뒤를 보고 수급 관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의 집값 폭등은 신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를 간과한 측면이 컸다. 규제 지역을 세분화하고 지역별로 촘촘하게 규제할 것이 아니라 단순화해야 한다. 규제 지역이 정 필요하다면 하나로 통일해도 충분하다.
-주택청약제도는 난수표라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젊은 층 위주로 또 개편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비교적 단순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마다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다 보니 난수표가 돼버렸다. 단순화해야 한다는 말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이미 수혜자가 정해져 이제는 근본적 손질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청약 통장 가입자가 2000만 명이 넘는다. 제도를 고치면 누구는 혜택을 받고 다른 누구는 불이익을 받는다. 청약 기회의 배분이 관건인데, 제대로 고치겠다면 여론조사 외에 방법이 없다고 본다.
-청약제도가 난수표처럼 된 근본적 배경은 ‘로또 청약’을 유발하는 분양가 통제에 있지 않나.
△공공 기관이 짓는 공공 주택이나 공공 택지 내 민간 주택은 가격을 규제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공영 개발 택지는 싸게 공급받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을 제 맘대로 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민간 택지 내 아파트는 다르다. 가격 규제는 민간 공급을 위축시키고 주택의 품질에도 영향을 준다. 시장 논리를 강조하는 현 정부가 분양가를 통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대선 공약은 ‘합리적 조정’이었다. 모호한 표현이지만 민간 택지 내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됐는데 기준 건축비 인상에 그쳤다. 공약을 만들 때는 시장 불안 요소가 있었던 시기여서 ‘폐지’라는 표현을 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가장 빨리 풀어야 할 제도가 분양가 규제다.
-규제 해제 속도가 더디다는 말인데.
△풀더라도 찔끔 풀고 만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만 하더라도 대선 공약은 규제 지역과 상관없이 70% 단일화였다.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를 유지하는 한 LTV 70%는 보수적 수준이다. 공약대로 왜 신속하게 이행하지 않는지 납득이 안 된다. 공무원 서랍 속에는 출구 전략이 다 있을 텐데 눈치를 너무 보는 것 같다. 현 정부의 주택정책은 규제를 합리적으로 풀고 시장 기능을 복원하리라는 시장의 기대를 저버렸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반시장적·비합리적 규제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게 대선 공약이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현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폐지한 아파트에 대한 임대사업제도를 부활하겠다면서도 소형 아파트에 국한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건 공약 물타기다. 서울 강남의 소형 아파트 임대는 가능하고 강북의 대형 아파트 임대는 안 된다는 것은 아무런 합리성이 없다. 정책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늦을수록 비용이 더 든다. 지금이 규제 완화의 적기다. 찔끔찔끔 대책을 내놓으면 추가 대책에 대한 기대 심리를 낳아 기왕의 대책마저 잘 먹혀들지 않는다.
-여소야대의 상황도 규제 완화를 더디게 하는 요인일 텐데.
△부동산 세제는 국회를 거쳐야 하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 등은 정부의 의지만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분양가상한제만 해도 주택법 시행령의 지정 요건만 손질하면 된다. 재건축의 첫 관문인 안전 진단 규제도 마찬가지다. 지은 지 30년이 되면 원칙적으로 가능하게 문턱을 낮춰야지 무너질 위험이 있어야만 재건축을 허용할 게 아니다. 대출 규제는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하지만 부동산 세제와 주택 공급과 관련된 제도는 다소 경직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래야만 장기적 예측이 가능하고 안정적인 시장구조를 만들 수 있다.
-3기 신도시는 계획 단계부터 필요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신도시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개발이익을 교통 등 인프라 확충에 투입할 수 있다. 다만 3기 신도시는 수요를 적기에 흡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2기 신도시처럼 미분양 무덤의 전례를 답습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속도 조절을 유념해야 한다. 반대로 서울은 여전히 새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추진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속히 정비해 공급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 조언한다면.
△더도 덜도 말고 대선 공약대로만 하면 좋겠다. 시장 기능의 회복과 부동산 세제 및 대출 규제의 정상화가 공약의 뼈대다. 눈치를 보거나 국회를 탓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신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