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초등생 살해 은폐한 경찰…법원 "국가가 2억2000만원 배상"

유골 발견하고도 은닉하고 가출로 종결
"국가가 유족에 위자료 보상 의무 있어"


33년 전 경기 화성시 일대 연쇄살인범 이춘재에게 초등학생 딸을 잃은 고(故) 김용복씨 가족이 국가로부터 2억2000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수원지법 민사15부(이춘근 부장판사)는 17일 김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인 피해자 부모에게 각 1억원, 오빠에게 2000만의 위자료를 산정했다.


재판부는 "경찰의 위법 행위로 유족은 피해자인 김모양을 애도하고 추모할 권리, 사망 원인에 대해 알 권리 등 인격적 법익을 침해당했다"며 "국가는 유족에게 정신적 손해에 따른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당시 경찰이 김양으로 보이는 유골을 발견했음에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이를 은닉했다"며 "피해자가 살해됐을 가능성을 인식했는데도 단순 가출 사건으로 종결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조작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김양(당시 8세)은 1989년 7월 7일 낮 12시30분께 경기 화성시 태안읍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사라졌다. 이 사건은 30년간 미제 가출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가 2019년 이춘재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김양 가출 사건은 살인 사건으로 전환됐다. 수사본부가 이춘재로부터 "김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자백과 함께 "범행 당시 줄넘기로 두 손을 결박했다"는 진술을 확보하면서다.


수사본부는 경찰이 고의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보고 당시 사건 담당 형사계장 등 2명을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했다. 30여년 전 경찰이 김용복 씨와 김양의 사촌 언니를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양의 줄넘기에 대해 질문한 것이 확인되고, 사건 발생 5개월 뒤 인근에서 김양의 유류품이 발견됐는데도 가족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할 때 혐의가 상당하다고 인정했다.


김양의 아버지 김용복씨 등 유족 3명은 "경찰의 조직적인 증거 인멸로 살해사건에 대한 실체 규명이 지연됐다"며 2020년 3월 2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날 법정에는 김용복 씨 부부의 아들이자 김양의 오빠인 김현민씨가 참석했다. 김용복 씨는 선고를 불과 두 달 앞둔 지난 9월 숨졌고, 어머니는 2년 전 소송을 제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오빠 김씨는 "동생의 소식을 기다린 30년보다 소송 판결까지 2년8개월을 기다리는 게 더 힘들었다"며 "재판부가 국가 책임을 인정하긴 했으나 당사자인 경찰들이 이 사건에 대한 사죄를 꼭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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