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미국 정치의 뜨거운 감자 '범죄율'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공화당, 뉴욕 등 민주당 강세지역에
"강력범죄 심각" 프레임 씌워 공격
정권·지역과 범죄율 상관 없지만
중간선거 전략으로 공포 심리 활용


중간선거 몇 주 전에 열린 오클라호마 주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조이 호프마이스터 후보는 ‘법과 질서’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건 공화당 소속의 현직 주지사 케빈 스팃을 상대로 뜨거운 공방을 펼쳤다. 호프마이스터 후보는 “스팃 주지사의 재임 기간에 오클라호마는 뉴욕과 캘리포니아보다 훨씬 높은 범죄 발생률을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헛웃음을 터뜨린 스팃 주지사는 방청석을 향해 “오클라호마 주민 여러분, 이곳의 범죄율이 뉴욕이나 캘리포니아보다 높다는 말을 믿으시나요”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호프마이스터의 주장은 사실이다. 살인 사건 발생률은 오클라호마가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20년 오클라호마의 살인 발생률은 캘리포니아에 비해 50%, 뉴욕보다 두 배가량 높다. 범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종종 현실과 충돌한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공화당은 범죄가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이른바 블루 스테이트와 대도시에 편중된 문제라는 대중의 그릇된 인식을 최대한 활용했다. 미국인들이 범죄를 우려하는 것은 맞다. 전국적으로 2020년 강력 범죄는 크게 늘어났다. 아직 구체적인 자료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2021년의 살인 발생률은 전년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1990년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범죄율이 급락한 원인을 모르듯 범죄율 급증의 원인 역시 아무도 모른다. 다만 타이밍으로 볼 때 팬데믹의 사회적·심리적 영향이 가장 유력한 공범으로 꼽힌다. 부차적 원인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해 경찰과 커뮤니티 관계가 훼손된 점이다.


범죄가 급증세를 보인 것은 맞지만 민주당 우세 지역인 대도시에 국한된 문제라는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 범죄율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준 레드 스테이트와 조 바이든이 석권한 블루 스테이트 모두에서 비슷하게 오르고 있다. 살인은 도시와 지방을 불문하고 가파른 오름세를 기록했다. 증감률 대신 범죄 발생률만 놓고 보면 살인과 강력 범죄는 블루 스테이트보다 레드 스테이트에서 전반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같은 사실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얼까. 그중 하나가 가시성이다. 블룸버그의 저스틴 폭스가 지적하듯 뉴욕시는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다. 그러나 다른 도시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인구밀도와 방대한 면적으로 인해 범죄를 목격했거나 들은 지인·친척을 둔 타지인들이 많다. 또 하나는 사전 인식을 확인해주는 이야기를 믿는 인간의 공통된 성향이다. 다수의 사람은 본능적으로 범죄인들을 거칠게 다루는 것이 효과적인 방범 전략이라고 믿기 때문에 비폭력 범죄자들을 사법 처리하지 않는 지역을 범죄에 취약한 도시로 여기게 된다.


이 같은 잘못된 인식은 범죄의 현실과 대중 인식 사이의 오래된 단절로 더욱 강화됐다. 강력 범죄는 1991년과 2014년 사이에 절반가량 줄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여론조사에서 대다수는 범죄가 오름세를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거주 지역에서 범죄가 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많지 않았다. 8월 여론조사는 범죄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대부분 다른 지역의 문제라고 믿는 경향성을 보여줬다. 강력 범죄가 전국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답한 대다수 가운데 소수만이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상황을 심각한 것으로 평가했다.


다시 범죄를 정치용 무기로 활용하려는 우익 언론과 공화당의 노력으로 돌아가 보자. 범죄가 레드 스테이트와 블루 스테이트, 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거의 비슷한 발생률을 기록 중인 사실은 이 문제가 그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정치적으로 효과적인 무기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이 어떤 일을 하건 우익의 주장은 설득력을 높여갔다. 게다가 범죄를 무기화한 공화당의 공세에 민주당이 거의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뉴욕의 경우 캐시 호컬 주지사는 범죄가 짚고 넘어가야 할 정치적 이슈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인식이라는 정치적 접근법을 뒤늦게 터득한 셈이다. 반면 에릭 애덤스 뉴욕 시장은 범죄 발생률이 이렇게 치솟은 건 처음이라며 뉴욕경찰국이 작성한 자료와 상반된 발언을 늘어놓았다. 대놓고 대중의 불안감을 들쑤신 셈이다. 2020~2021년의 범죄 급등기 후에도 뉴욕의 중범죄는 1990년도에 기록된 정점 아래에 머물렀다. 사실 루디 줄리아니가 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필자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사실을 바로잡는 일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최근 범죄 급증세에 대한 우려를 인정하되 늘 강력한 대응을 외치는 우파가 실제로 범죄율을 낮은 수준에 묶어 놓는 데 전혀 수완을 보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게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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