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사고 당시 현장 지휘 책임자인 이임재(53) 전 용산경찰서장과 최성범(52) 용산소방서장을 오는 21일 소환 조사한다.
이 전 서장은 오전 9시, 최 서장은 오전 10시 특수본 조사실이 있는 서울경찰청 마포수사청사에 각각 출석할 예정이다.
특수본은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이들이 사고 전후 적절히 대응했는지 따져보기 위해 경찰·소방 관계자들을 대거 참고인으로 불러 사실관계를 물었다. 조사를 하루 앞둔 20일은 참고인 소환 없이 지금까지 수사 결과를 종합해 피의자 신문 내용을 다듬었다.
이들의 법적 책임이 사고 원인 규명과도 직결되는 만큼 특수본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범죄 혐의를 구체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수본은 앞서 소환한 박희영(61) 용산구청장을 비롯한 주요 피의자 조사를 이번 주 내로 마무리하고 구속영장 신청 등 신병처리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핼러윈 기간 인파사고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사전 조치를 하지 않고 참사가 발생한 지 50분 뒤에야 현장에 도착해 늑장 대응한 혐의를 받는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직무유기 등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용산서는 참사 전 작성한 보고서에서 핼러윈 직전 주말 하루 약 1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이태원관광특구를 중심으로 한 좁은 공간에 모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면서 “핼러윈 주말 200여 명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하고 시민 안전과 질서유지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 사고 당일 투입된 경찰 인력은 137명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서장은 핼러윈 기간 전 서울경찰청에 경비기동대 투입을 요청했으나 인력 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관련 부서에 핼러윈 축제와 관련해 가장 효율적인 경비기동대를 요청하라고 지시했고, 직원이 서울청 주무 부서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수본은 압수물 분석과 참고인 조사에서 용산서가 경비기동대를 요청했다는 명확한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서울청도 이에 대해 “용산서가 참사 전 서울청에 공식 문서로 기동대 배치를 요청한 사실은 없다”며 “용산서에서는 서울청에 ‘구두로’ 기동대 배치를 요청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수본은 기동대 요청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확정한 뒤 부실한 사전 대비의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지 법리적으로 판단할 방침이다. 수사 결과 이 전 서장의 국회 증언이 거짓으로 확인되면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발생 15분 전인 오후 10시께 사고 현장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녹사평역에 도착했으나 차량 이동을 고집하다가 오후 11시 5분께 현장 인근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의 늑장 대응에 직무유기죄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이 전 서장은 이에 대해 고의로 직무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전 서장은 “이태원 참사 상황을 알게 된 시점은 오후 11시경”이라며 현장 상황을 늦게 보고 받아 대응이 늦어졌을 뿐, 고의로 직무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이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부에 늑장 보고하고, 상황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추궁할 방침이다.
최 서장은 참사 전후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의혹에 따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됐다.
참사 당일 112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고 1시간 38분 전인 오후 8시 37분과 오후 9시 1분 두 차례 서울종합방재센터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부상자가 없다거나 구급차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의견을 경찰에 전달하고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다.
특수본은 이 과정에서 최 서장이 현장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특수본은 최 서장에 대해 사고 발생 직후 대응 2단계 발령이 늦어져 인근 소방서 인력이 신속하게 투입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도 물을 전망이다. 최 서장은 참사 발생 28분 뒤인 10시 43분 현장지휘팀장에게 지시해 1단계를 발령했다. 2단계와 3단계는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이 각각 오후 11시 13분과 오후 11시 48분 발령했다. 대응 2단계는 10명 이상, 3단계는 20명 이상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 각각 발령한다.
서울시 사고 및 재난 현장 긴급구조 지휘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에 따르면 2단계까지는 자치구 긴급구조통제단장, 즉 용산소방서장도 발령할 수 있게 되어있다.
특수본은 최 서장을 상대로 이미 수십 명이 심정지 상태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응 2단계를 발령하지 않은 이유를 집중적으로 캐물을 예정이다.
특수본은 용산소방서가 핼러윈을 앞두고 작성한 ‘2022년 핼러윈 데이 소방안전대책’ 문건을 토대로 사고 당일 안전 근무조가 근무 장소에서 대기
를 준수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용산소방서는 지난달 28일∼31일 나흘간 매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해밀톤호텔 인근에 안전 근무 인원을 배치했다. 그러나 안전 근무조는 참사 당일 밤 10시까지 이태원 119안전센터에만 머물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최 서장은 안전근무 책임관이었다.
인파가 몰리는 핼러윈을 앞두고 안전 대비책을 부실하게 세운 책임을 최 서장과 소방당국 지휘부에 물을 가능성도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재난안전법에 소방은 긴급 구조기관으로 명시돼 있다”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외에 재난 발생 우려가 현저할 때도 인명구조나 응급처치 등 필요한 긴급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수본은 소방당국 내부 문건, 보디캠 현장 영상, 무전 녹취록, 개인 업무기록 등 객관적 증거와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 진술을 종합해 최 서장의 혐의를 입증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