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우방국과 인태 전략의 판을 키워야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尹, 동남아 순방서 인태전략 강조
특정국가 배제하려는 의도 아닌
네트워크 확대 노린 지역협력 행보
美·中간 '균형외교' 관점 벗어날때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이번 대통령 동남아 순방 외교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의 인태 전략을 국제사회에 공표한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인태 전략을 하려는 것인가. 일부에서 주장하듯 미국의 인태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고 중국을 적으로 돌리려는 것일까.


인태 전략은 무엇보다도 인태 지역 전반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고자 하는 외교 구상이다. 인태 지역 국가들뿐만 아니라 유럽 주요국들도 경쟁적으로 인태 지역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만 그동안 중국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인태 지역 관여를 외면해 인태 전략 경쟁에서 한참 뒤진 상태였다. 인태 지역은 세계경제의 60%를 차지하는 지정학적 각축의 중심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 지역에 경제적·외교적 관여를 확대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 질서의 가장 큰 수혜자다. 한국의 발전과 번영은 자유무역 제도와 규범, 다자 체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부상과 역내 전략 균형의 변화로 불안정성이 증가하면서 기존 질서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인태 지역의 안정과 평화는 우리에게는 사활적 이익이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이익이다.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규칙 기반 질서 강화를 인태 전략의 핵심 목표로 설정한 이유다.


인태 전략을 ‘대미경사(미국으로 기울어짐)’로 보는 일부 시각은 사실과 맞지도 않다. 모두 저마다 독자적 인태 전략을 채택하고 인태 전략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최근 독자 외교 행보로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있는 인도는 이미 2018년에, 그리고 미중 사이에서 중립을 견지하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도 2019년 독자적 인태 전략을 채택·추진하고 있다. 이 모든 국가들이 미국 인태 전략을 추종·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태 전략은 중국과 척을 지거나 맞서려는 것이 아니다. ‘대중국’ 전략이 아니라 인태 지역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는 ‘지역 협력’ 전략이다. 아세안에만 초점을 맞추던 데서 벗어나 인태 지역의 거점 국가들과 지역 협력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또 기존 경제 통상 중심에서 해양, 역내 질서 재편 등 안보·전략 분야에서 역할을 확대하려는 구상이다. 인태 전략의 첫 번째 원칙은 포용(inclusiveness)이다. 특정국을 배제하거나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국가든 공동 이익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중국과도 ‘상호존중’의 원칙하에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인태 전략은 한국의 책임과 역할을 확대하려는 기여 외교 전략이기도 하다. 이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부응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전임 정부보다 더 강력한 아세안 정책을 추진하려는 구상이다. 이제 아세안을 단순한 경제 파트너를 넘어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그동안 결여됐던 안보 및 전략 분야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인태 전략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동맹국인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독일 등 역외 우방국과의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또 우리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핵심 파트너인 인도·아세안·호주와의 협력도 한층 심화시켜야 한다.


균형 외교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선호를 벗어나는 한국의 모든 외교적 선택은 대미경사이고 미국 편승이다. 하지만 미중 간 균형을 맞추려는 외교는 더 이상 가능하지도, 우리 국익을 위해서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익에서 한참 벗어나더라도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몸을 낮추는 균형 외교의 굴레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인태 전략은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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