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 아아!”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왜군의 유탄을 맞고 쓰러진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글이다. 이 글을 쓴 저자는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에 오른 문신이자 ‘징비록’의 저자로 잘 알려진 서애 류성룡(1542∼1607년)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류성룡이 생전 썼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를 올해 9월 국내에 들여왔다고 24일 밝혔다. ‘대통력’은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하는 책력(冊曆·월일과 절기 등을 적은 책)이다.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어 농사를 짓는 데 유용하게 쓰였고 일상에서도 많이 활용했다.
이번에 돌아온 대통력은 표지를 포함해 총 16장 분량으로 경자년(1600년) 한 해의 기록을 담고 있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기재된 필적과 주로 언급되는 인물, 사건 정보 등을 토대로 류성룡의 연대기가 기록된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 등을 검토한 결과 그의 수택본(手澤本)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수택본은 소장자가 가까이 두고 자주 이용해 손때가 묻은 책을 뜻한다.
이번 대통력은 임진왜란 당시 군사 전략가로도 활약한 류성룡이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데다 그 안에 담긴 내용상으로도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종이를 사용해 임시로 책을 매어둔 표지에는 총 83자가 남아 있다.
위아래가 일부 잘려져 있는 이 글에는 ‘여해(汝諧)’라는 이름과 함께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여해는 이순신의 자(字), 즉 충무공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이처럼 귀중한 자료가 국내로 돌아오는 데는 ‘조력자’들의 도움도 컸다. 대통력은 일본인 소장자가 2년 전 경매를 통해 사들였는데 김문경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가 올해 5월 관련 내용을 문화재청과 재단 측에 알리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정보를 입수한 재단 등은 고전학자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에게 자료 번역을 맡겼고 두 달간 내용을 검토한 끝에 이순신 관련 기록 등이 확인됐다. 이후 재단은 세 차례의 평가위원회를 거쳐 유물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