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200년간 모습 달리해온 '자유주의' 본질은

■자유주의
에드먼드 포셋 지음, 글항아리 펴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사에서 35번이나 자유를 언급했다.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33번 자유를 말했고,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도 21번 자유를 외쳤다. 하지만 자유를 자주 말하는 사람 모두가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상당수 비자유주의자도 자신이 자유를 옹호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자유’만으로 그의 신념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토크빌은 자유주의자고 마르크스는 아니지만, 마르크스를 자유주의자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기조와 밀이 자유주의자였음은 분명하지만, 밀이 좀 더 순도 높은 자유주의자로 분류된다. 후버도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루스벨트보다는 약했다. 19세기 말의 친기업적 자유주의자는 친기업적 보수주의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사회지향적 자유주의자는 1945년 이후 친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와 구별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영국의 정치 전문기자 에드먼드 포셋이 자유주의의 역사를 집대성했다. 저자는 1830년대 탄생한 ‘자유주의’의 성장과 발전, 흥망성쇠 과정 200여 년을 사람의 일생처럼 들여다 봤다. 특히 자유주의 정치사상가를 중심으로 자유주의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고찰했다. 물론 자유주의가 한 가지 개념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저자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비유하자면 단시간에 문자로 정리된 성문법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관습에 따라 만들어진 불문법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라 자유주의는 모습을 달리했다. 자유주의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19세기 자유주의자 훔볼트는 인간 능력의 무한함을 중시했고, 콩스탕은 개인 프라이버시의 절대성을 강조했다. 밀은 가치 있는 삶의 방식과 개별성의 증진을 이야기했고, 슐체델리치는 큰 기업과 중앙집권적 정부의 동반 성장이 어떻게 소기업과 지역의 통치권을 붕괴시키는지에 몰두했다. 공통점은 “인간의 기획과 능력의 가치를 권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1880년대 이후 계급 갈등 속에 자유주의는 위기를 마주했다. 교육과 문화 발전은 자유주의자들의 기대와 달리 합리적이고 공정한 시민을 양성하는 데 큰 효과가 없었다. 무역과 경제 의존은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경쟁을 야기해 식민주의를 일으켰다. 결정적으로 1930년대의 불황 속에서 자유주의자들은 더 이상 시장의 ‘자유방임 원칙’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결국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타협해 ‘자유민주주의’가 출연했지만 물질적 진보가 편견과 증오를 없애지는 못했다.


대체 자유주의의 근본은 무엇일까? 갈등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권력 견제를 위한 저항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이다. 진보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며, 모든 이를 시민으로 존중해야 자유주의자다. 4마5000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