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던 이찬호 씨. 이 씨는 이 사고로 배우의 꿈을 접어야 했다. 5년이 흘렀다. 그는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배우가 아닌 모델로. 불의의 사고를 극복하면서 얻은 불 같은 정열과 강렬한 눈빛은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씨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차해리(34) 대표가 이끌고 있는 국내 최초 장애인 전문 기획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덕분이었다. 24일 서울 효제동 사무실에서 만난 차 대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은 경험이 그에게 오히려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2020년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 한민수 감독과 파라스타를 창업한 차 대표는 기업인보다는 방송인으로 일반인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전직 보도 전문 채널 아나운서 출신으로 한 지상파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덕이다. 지난해 한 감독이 공동대표직을 사임한 후 지금은 홀로 장애인 모델·댄서·연기자 등 30명을 이끌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차 대표가 기획사를 차리게 된 것은 장애인들의 방송에 대해 욕구는 크지만 갈 수 있는 직군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부터다. 장애를 가진 이들은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장벽이 많다. 출연료 협상, 계약서 작성 등 일반적인 업무 외에도 수화 통역, 시각장애인 지원 등 그들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해야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소속 아티스트 선발에 엄격한 이유다. 그는 “장애인 중 방송을 원하는 사람은 모두 한 번씩 만나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이를 만났다”며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할 수 없는 처지다 보니 꼼꼼히 뽑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차 대표는 장애를 결코 단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기에 따라 자신의 개성을 더 돋보이게 하는 장점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특히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면이 성숙하고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는 “장애인들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거친 굴곡진 인생을 살면서 사회화하고 더 강해진다”며 “여기에 호감 가는 외모와 아름다움까지 겸비한다면 사회의 편견을 깨고 ‘멋있다’ ‘아름답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점이 되는 순간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비장애와의 구분도 필요치 않다. 오히려 그 자체가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차별일 수 있다. 그가 소속 아티스트들을 이야기할 때 장애인 모델, 장애인 연기자가 아닌 그냥 ‘모델’ ‘연기자’로 부르는 이유다. 차 대표는 “장애라는 게 좋은 단어인 것 같지는 않다”며 “장애인 모델보다는 휠체어 모델, 모델, 그다음은 사람 이름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미 유명세를 탄 소속 아티스트들도 상당수다. 국내 최초의 휠체어 모델 김종욱 , 사고로 척수 장애를 얻은 웹툰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고연수, 국내 최초의 외발 비보이 김완혁,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발레리나 고아라 등이 각종 무대와 CF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모델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이찬호 역시 방송 MC, 온라인 게임의 메인 광고 모델 등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차 대표의 사업 철학은 간단하다. ‘돈을 많이 벌자.’ 이유는 간단하다. 장애인 사업도 사업이기 때문이다. 자선사업을 하려 했다면 재단법인을 세웠겠지만 파라스타는 주식회사다.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하려면 구걸이 아니라 수익을 올려야 한다. 그는 “장애인 사업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을 일 한다’고 말하지만 망하면 할 수 없다”며 “장애인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가치를 키우는 것이고 나아가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역설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난하다는 편견도 깨고 싶었다고 한다.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사업도 궁핍하지 않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뜻이다. 올 초 하나벤처스로부터 투자를 받고 추가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나이팅게일 같은 이가 더 잘살고 더 풍요롭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겠죠. 정의롭다는 것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 부유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