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축구대표팀의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에 공개적으로 기뻐하던 남성이 이란 보안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지난달 29일(이하 현지 시간) 카타르 도하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이란은 미국에 0-1로 져 조 3위(승점 3)에 머물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30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카스피해에 접한 이란 북부 도시 반다르 안잘리에서 이란 대표팀의 패전을 축하하기 위해 자신의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환호한 메흐란 사막(27·남성)이 이란 보안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이란 대표팀이 미국에 패한 뒤 보안군이 그(사막)를 직접 겨냥해 머리를 쐈다”고 가디언에 밝혔다.
이란에선 지난 9월 22세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이는 등 복장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가 갑자기 숨진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됐다. IHR에 따르면 보안군의 손에 살해된 사람은 어린이 60명, 여성 29명을 포함해 448명에 달한다.
정부의 탄압에 대항하는 이란인들은 이번 카타르 월드컵이 이란 정권의 선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월드컵 출전에 반대하기도 했었다. 출전이 결정되고서도 상당수는 이란 대표팀에 대한 응원을 거부했다.
이번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1979년 국교를 단절한 뒤 40년 넘게 적대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미국도 이란 정부의 탄압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란 반정부 시위를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열망’이라고 홍보하며 시위대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양국 관계는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사망한 사막은 29일 미국전에서 뛴 이란 미드필더 사이드 에자톨리히(26·바일레)의 지인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사막처럼 반다르 안잘리 출신인 에자톨리히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어린 시절 사막과 함께 유소년축구팀에서 뛰었다고 소개하며 비통함을 드러냈다.
그는 “너를 잃었다는 지난 밤의 비통한 소식에 가슴이 찢어진다”면서 “언젠가는 가면이 벗겨지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 우리 조국이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분개했다.
이날 이란 대표팀이 숙적 미국에 패배하자 이란 반정부 시위대가 이란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환호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상에 확산한 바 있다.
이란 응원단은 이날 경기에서 반정부 시위의 대표 구호인 ‘여성, 삶, 자유(Women Life Freedom)’ 등을 외쳤고, ‘마흐사 아미니’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가 관계자에게 제지받는 상황 등도 목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