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고발땐 원금 없다" 회유…속 끓이는 피해자들

[진화하는 불법 다단계 사기]
<상> 묻지마 투자에 원금 날리는 고령층
"10%라도 건지려" 선뜻 신고 못해
법조계 "빠른 법적대응이 해결책"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근에 위치한 한 불법 다단계 업체 사무실. 대부분의 불법 다단계 업체는 간판도 없이 투자 설명회를 진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건율 기자

신종 불법 다단계 사기 피해가 급증하는 가운데 정작 손실이 큰 피해자들은 고소·고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다단계 업체 측이 “고소에 나설 경우 원금을 찾을 확률이 더 낮아진다”고 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원금의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 투자금의 10%도 안 되는 금액에 업체와 합의를 하고 있다. 기존 피해자들이 경찰 신고를 꺼리는 동안 또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하면서 사실상 불법 다단계 사기 피해가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서울경제와 만난 피해자 오 모(61) 씨는 “지난해 12월 다단계 사기로 10억 원을 잃고 수서경찰서에 고소를 진행했다”며 “피해자가 수백 명인데 지금 고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업체 측이 고소를 취하할 경우 원금을 돌려주겠다고 회유하고 있는데 헛된 희망에 빠질 때가 많다”고 답답해했다.


피해자들이 고소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원금 회수에 대한 우려다. 당장 사용할 생활비 등이 없어 원금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업체 측과 합의하는 경우도 있다. 불법 다단계 업체에 6000만 원가량을 투자한 A 씨는 “경찰에서 수사를 진행할 경우 오히려 원금을 찾기가 더 어렵다는 생각이 피해자들 사이에 만연하다”며 “업체를 믿고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불법 다단계 업체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찰 수사가 적극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피해액이 커도 고소나 고발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원금 회수를 위해 신속한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우정 인사이트파트너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폰지사기나 다단계 사기의 경우 업체 측이 투자금을 빼돌리기 전에 최대한 빨리 형사 고소를 진행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