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는 과학이다] 한 소녀의 증언이 밝힌 계부의 '인면수심' 범죄

<1>진술분석
1년 가까이 이어진 성폭행·추행
악몽같은 기억 털어놓은 중학생
檢, NDFC 진술분석으로 진위 파악
혐의 부인하던 계부 자백 이끌어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진술분석 면담실에서 진술분석관이 피해자로부터 진술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대검찰청

범죄가 해마다 지능화·고도화되면서 검찰 움직임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발로 뛰는’ 현장의 우선 대응과 함께 과학 수사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대응을 위해 대검찰청이 수사 ‘최전선’에 세우고 있는 건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다. 문서 감정, 영상·진술분석, 디지털·DNA 포렌식 등 강점으로 검찰의 수사 시계를 한층 앞당기고 있다. 서울경제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과학수사의 현 주소를 소개하고자 NDFC의 사건 해결 과정을 소개한다.



수 개월 전 대검 NDFC 진술분석 면담실. 만 14세 여중생은 담담하게 진술을 이어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윤여훈 대검찰청 법과학분석과 진술분석관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마치 계부에게 입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잊기 위한 듯 증언을 쏟아냈다. 하지만 A양은 ‘어머니’라는 단어에는 금새 눈시울을 붉혔다. A양이 1년 가까이 이어진 악몽같은 순간들을 숨긴채 참아온 것도 ’혹여 계부에게 어머니가 버림받아 상처입는다’거나 ‘본인 탓이라고 자책할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밤이면 ‘인면수심’의 계부로부터 몸과 마음이 상처받더라도 ‘어머니는 끝까지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악몽같은 사건이 시작된 건 A양이 갓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였다. 40대 계부는 친모가 야근으로 늦는 날이면 어김없이 A양의 방을 찾았다.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성폭행·성추행이 5~6차례나 이어질 정도였다. A양에게는 당시가 말 그대로 지옥이었으나 계부는 혐의 자체를 100% 부인했다. ‘그런 일 자체가 없다’는 게 계부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친족 내 성폭행은 피해자가 ‘가족’을 걱정하는 생각 등으로 신고 자체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증거가 쉽게 남지 않는 탓에 증언에 대한 진위 파악이 중요하다. 결국 B지방검찰청은 대검에 진술분석을 의뢰했고, 윤 분석관은 진술타당성 분석에 착수했다. 이는 피해자의 진술의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과정으로 반구조화된 인터뷰(포렌직 인터뷰)·진술내용분석(CBDA)·타당성 요인 검토 등 단계로 구성된다. 윤 분석관은 우선 A양의 증언을 들으며 표정부터 말투·몸동작 등 미세한 움직임까지 살폈다. 또 A양 진술에 혹시 모를 기억의 오류는 없는지까지 하나하나 분석했다.


윤 분석관은 “사건 당시 A양은 어머니 걱정에 계부에게 제대로 된 반항조차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계부에게 거부의 뜻으로 몸을 뒤척였다거나, 잘못 맞춰진 시계 알람이 울려 방을 나갔다는 등 구체적 정황을 진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증언의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조사 과정에서 윤 분석관이 쓴 면담 기법은 미국 국립아동건강발달연구소(Nationnal Institute of Child Healty and Developement)가 개발한 ‘아동학대조사(NICHD) 프로토콜이었다.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스웨덴, 이스라엘 등 선진국에서 아동·지적장애인 조사·면담 때 주로 사용한다. 전문화된 조사 방법으로 포렌직 인터뷰를 하고, 이를 분석해 타당성 요인까지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A양 진술이 ‘진실’임을 판단한 것이다. 결국, A양이 밝힌 진실에 계부는 스스로 범행을 시인했고, 검찰은 그를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최선희 대검 법과학분석과 진술분석실장은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가 최대한 압박 없이 진술하고 상처받지 않게 해야 한다”며 “때문에 친족 내 성폭행·추행 사건의 경우 부모 동참을 하지 않도록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A양도 포렌직 인터뷰 때 국선변호사와 동행했다. 최 실장은 이어 “포렌직 인터뷰를 실시하는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나이와 가족 동거 유무나 장애가 있는지 등 환경적 요인까지 고려한다”며 “혹시 모를 무고까지 고려해 조사 당사자 등 3인 합의체에서 회의를 거쳐 진위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경제는 해당 기사로 인해 피해자가 2차 가해 등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익명 처리하는 한편 사건 시기도 기재치 않았습니다. 또 사건 내용도 실제와는 조금 다르게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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