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해외 투자 선점"…美운용사 지분 인수한 KIC

골럽캐피탈 지분 5% 미만 인수
국민연금·삼성생명도 북미 운용사 투자
소수주주로 내실에는 의문



글로벌 투자 기회를 선점하려는 기관투자가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역량 있는 자산운용사의 지분을 사들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주로서 배당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운용사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우량 투자 기회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소수 지분 인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내실 있는 협업이 되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투자공사(KIC)는 북미 최대 사모채권 운용사 중 하나인 골럽캐피털의 의결권 없는 지분 5% 미만을 직접 인수했다고 9일 밝혔다.


1994년 설립된 골럽캐피털은 10월 기준 운용자산(AUM) 규모가 550억 달러(약 72조 원)에 달하는 북미 최대 자산운용사다. 초기에는 경영권 거래가 많았으나 2000년 이후 사모대출펀드(PDF) 중심으로 전환했다. 사모대출이란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모집한 자금을 기업 대출이나 회사채 인수에 활용해 수익을 내는 투자 방식이다.


KIC는 2009년 대체투자에 첫발을 디딘 후 꾸준히 규모를 늘리고 있다. 2020년 15.3%(순자산가치 기준)이던 KIC의 대체자산 비중은 올해 8월 말 21%를 돌파했다. KIC의 출범 이후 누적 수익률은 전통 자산(주식·채권)의 경우 4.21%에 불과하지만 대체자산은 8.36%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진승호 KIC 사장은 “앞으로 직접투자 역량을 강화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투자기관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자산운용사를 인수해 투자 기회를 선점하는 것은 글로벌 연기금 사이에서는 활성화된 방식이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은 현재 에이팩스·TPG·CVC캐피털 등 글로벌 사모주식 운용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9월에도 사모펀드 오크스트리트와 함께 미국 리츠 자산운용사인 스토어캐피털의 지분 100%를 140억 달러에 인수했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또한 2015년 북미 대출 투자 전문 운용사인 안타레스캐피털(GE캐피털)을 120억 달러(약 13조 원)에 인수해 투자 업계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도 2019년 약 3000억~4000억 원을 들여 영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BC파트너스 지분 10% 안팎을 확보했다. 이후 출자한 공동투자 펀드까지 포함하면 투자 금액은 약 1조 원에 이른다.


국내 최대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은 지난해 5월 글로벌 부동산 그룹 세빌스 산하 자산운용사 세빌스IM의 지분 25%를 약 1000억 원에 사들이고 향후 4년간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 규모의 자산을 위탁 운용하기로 약정했다. 한 대형 연기금의 투자 관계자는 “펀드에 출자하는 것보다 지분을 인수하거나 공동투자자로 나서면 개별 투자 사례를 세부적으로 볼 수 있고 수수료가 없어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국내 기관들의 특성상 이 같은 파트너십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으로는 이번 해외 운용사 지분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대형 대체자산 운용사의 투자 노하우를 배울 경험을 제공해 이탈을 막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KIC에서는 지난 한 해 18명의 인력이 퇴사한 데 이어 올해 8월까지 16명이 추가로 퇴직했는데 특히 운용역의 역량이 중요한 대체투자 분야의 이탈이 많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내부에서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여기에 2~3년 주기로 사장까지 교체되면 전임자가 추진하던 해외 운용사와의 파트너십을 얼마나 잘 유지해나갈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국민연금이나 KIC 등 공공 연기금은 각종 규제 탓에 민간 운용사의 최대주주가 되기 어렵기 때문에 소수 주주로서 영향력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연기금은 글로벌 운용사의 경영권 인수까지 검토했으나 소관 행정 부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이를 접었다. 글로벌 연기금이 운용사 경영권을 사들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