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개 상장사 대상 빅4회계법인의 감사인 수주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생명보험 업계 자산규모 1위 삼성생명의 감사인으로 다시 선임되면서 삼일PwC 회계법인이 구겨진 자존심을 폈다. 삼일은 삼성중공업, KB금융지주·카드·손해보험의 감사인으로도 재선임됐다. 이들 기업은 주기적 지정제로 삼정KMPG가 지난 3년 동안 감사를 맡아왔다. 그 전에는 세 곳 모두 삼일이 감사했다. 딜로이트안진과 EY한영의 추격도 매섭다. 안진은 LG화학, 삼성전기, 현대해상의 감사인으로 선임됐고 한영은 GS건설, 롯데케미칼, BNK금융지주 등에 선임되며 실속을 챙겼다는 평가다.
11일 회계 업계에 따르면 삼일은 감사인 자유선임 대상으로 풀린 삼성생명의 외부감사인을 맡게 됐다. 삼성생명 지정감사인은 2019년 외부감사법(신외감법) 도입 이후 삼정이 3년간 맡아왔다.
삼일은 이번 삼성생명의 외부감사인이 되면서 자유선임 경쟁에서 한 숨 돌렸다는 평가다. 삼일은 약 40년 동안 감사를 맡았던 삼성전자가 삼정을 새 감사인으로 택한 후 자존심에 타격을 입었다. 삼성생명까지 삼일을 떠날 경우 업계 1위 평판이 급격히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2019 회계연도까지만 해도 삼성생명의 전담 감사인은 삼일이었다. 삼성생명의 총 자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315조 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 생명보험 업계 전체 자산의 31%에 달한다. 삼일은 주요 IT 플랫폼 업체와 해운 업체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이번 주 중 감사인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지난 11월부터 벌어진 빅4 회계법인 사이에 벌어진 감사인 수임 전쟁은 중반전을 넘어서고 있다. 220개 상장법인이 올해 내 새 외부감사인을 선임해야 해서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에 따라 한 기업이 6년 연속 감사인을 자유선임하면 다음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도록 했다. 주기적 지정제 도입 후 3년이 지나 지정감사를 받은 주요 대기업들이 자유선임 시장으로 돌아왔다. 자유선임 계약은 내년 2월까지 진행된다. 초반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반도체 투톱을 수임한 삼정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쏠렸지만 12월 중반전으로 돌입하면서 삼일, 안진, 한영도 추가 수주 소식을 알리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영의 약진도 돋보인다. 11월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의 외부 감사인으로 선정된 한영은 에너지와 플랜트 부문 감사 경험을 살려 관련 대기업의 일감을 대거 수주했다. GS건설, 롯데케미칼, 한국앤컴퍼니, 넥센타이어가 대표적이다. 금융지주인 BNK금융지주도 한영이 외부감사인을 맡게 됐다. 안진은 LG화학, 삼성전기, 현대해상 수주에 성공했다. 반면 삼정은 12월 들어 대한항공에 이어 엔씨소프트를 추가 수주하는 데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감사는 회계법인의 캐시카우이자 평판을 좌우하는 기본 중 기본이다”며 “내년 2월까지 외부감사인 선임을 앞두고 프리젠테이션(PT) 일정이 잡힌 만큼 마지막까지 한 명의 기업이라도 더 수주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국내 회계 업계는 격변의 해를 맞은 이후 올해 두번째 ‘회계 대전’을 맞은 셈이다. 첫 족쇄가 채워진 기업들의 3년 기한이 내년에 풀리자 회계 업계는 이전에 없던 기회를 맞아 한 곳이라도 더 감사를 수임하려 총력전에 나섰다. 다만 정부의 감사인지정제로 매년 회계 업계가 수주 전쟁을 치르게 돼 신구 감사인 간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