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광고 외주 업체에 다니던 A(29) 씨는 올 9월 회사를 떠났다. A 씨는 회사를 떠나면서 “나가고 나서도 필요하면 일을 거들 테니 제발 해고된 것으로 처리해달라”고 회사 대표에게 부탁했다. 제 발로 회사를 나가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없는 탓이다. 덕분에 A 씨는 5개월 동안 890만 원가량의 구직급여를 탈 수 있게 됐다. 한 달이면 180만 원가량을 받는 꼴인데 직장 다닐 때 받았던 월급(189만 원)과 별 차이가 없다. A 씨는 “취직했다가 구직급여 요건만 채우고 나가길 반복하는 친구들이 ‘노하우’를 알려줬다”면서 “구직급여에 주말이면 친척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일당 7만 원을 현금으로 받아 주머니 사정은 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했다.
# 전남 장성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중견 제조 업체 B 사는 이른바 ‘면접 노쇼’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 초 코로나19 여파가 잦아들면서 매출이 늘어날 조짐을 보이자 15명을 충원하려 했지만 채용 공고를 낼 때마다 번번이 헛물만 켰다. B 사 대표는 “올해 내내 취업 사이트에 젊은 직원 뽑는다고 공고를 올려놓을 때마다 지원서 수십 장이 날아오는데 막상 연락하면 받지 않고 연락이 닿아도 면접장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며 “구직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구직 시도 증명 목적’으로 원서만 찔러보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재취업을 독려하기 위해 마련된 구직급여가 되레 취업 의욕을 떨어뜨리는 일이 늘고 있다. A 씨처럼 ‘비자발적 실업’을 가장해 직장을 나오는가 하면 퇴직 후 새로 취업한 사업장에서 구직급여 요건만 채우고 다시 일터를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과도한 구직급여 탓에 중도 퇴사자가 늘고 구직 의사만 보인 뒤 현장에 오지 않는 일도 잦아 사업주들의 시름도 크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저임금근로자를 중심으로 실업 상태를 더 선호해 중소기업들의 인력난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인사는 “한 달에 190만 원을 벌더라도 교통비나 식대로 빠져나가는 돈까지 고려하면 쉬면서 180만 원을 버는 게 더 낫지 않겠냐”라면서 “일반적인 경우라면 소득대체율을 80% 이하로 설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역시 현행 구직급여제도를 도입하면서 평균 임금의 60%를 보조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문제는 부가 조항 격으로 둔 하한액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월 최저임금을 산정할 때는 ‘주 6일(근무일 5일+유급휴일 1일)’을 기준으로 삼는데 구직급여 기준은 ‘주 7일’로 하루 분을 더 준다. 특히 재직 시 주 15시간의 근무시간을 채우지 못했다면 유급휴일마저 인정받지 못해 월급과 구직급여 차이는 더 벌어진다. 부가 조항이 제도의 큰 틀을 허무는 것으로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방만한 급여제도가 재취업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2017년부터 5년간 지출된 구직급여는 총 43조 4895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구직급여 수급인의 재취업률은 2016년 31.1% 이후 30% 아래로 떨어져 지난해 26.9%까지 줄었다. 구직급여의 기반이 되는 고용보험기금의 부담도 맞물려 커졌다. 고용보험기금 적립금 규모는 2017년까지만 해도 10조 원을 웃돌았으나 지난해 5조 6000억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전문가들은 기존 소득과 무관하게 정액을 지급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최저임금의 상승세를 고려해 구직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에 자동 연동되는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한 인사는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과 연동돼 자동으로 오르는 구조인데 이 고리를 느슨하게 해야 한다”면서도 “노동계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 이 문제를 도마에 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구직급여의 하한액을 낮추는 한편 지원 기간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안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국제 비교가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들의 구직급여 현황을 보면 소득대체율을 60%로 이하로 두되 지원 기한을 우리(최대 9개월)보다 3개월 더 늘린 12개월로 설정했다. KDI는 “우리 구직급여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수급 기간은 다소 짧은 편”이라면서 “다만 지원 기간을 지나치게 연장할 경우 실업 장기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취업 유인 정상화와 함께 점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