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 규제 완화에 나서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천정부지로 뛰던 집값이 어느 순간 하락세로 돌변했다. 낙폭도 심상치 않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은 1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정책 방향을 제대로 잡았지만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완화의 핵심은 대부분 법 개정 사항인데 국회 권력은 거대 야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유 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교체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의 심판인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싶다면 민주당 스스로 정책 과오를 인정하고 규제 완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는 서울 둔촌주공 아파트 일반 분양이 흥행에 사실상 실패했다.
△일부 주택형은 수도권에서도 1순위 마감을 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후순위로 가도 마감이 되지 않는 주택형이 나올 것 같다. 무순위 청약으로 이른바 ‘줍줍’ 상황이 될 수도 있지만 요즘 분위기에서는 그런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은 시장가격과 신규 공급가격이 거의 비슷하다. 기존 집값은 내려가고 분양 가격은 올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둔촌주공 아파트를 분양받아 한참 뒤에 입주하느니 조금 더 비싸더라도 서울 송파 헬리오시티 아파트를 사서 바로 입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이렇게 급변한 데는 금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인가.
△연초에 0.25%였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지금 4%까지 올라왔다. 연말에는 4.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과 9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나라도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급등한 금리는 주택 수요자는 물론 공급자에게 대단한 압박이 됐다. 금리가 훌쩍 오르니 이자를 갚기도 어려운 한계 기업들은 더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다.
-레고랜드 사태는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인가.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2050억 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부도 처리되면서 지금은 200조 원을 풀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됐다. 정부가 ‘50조 원+α’ 규모로 공급한 유동성이 100조 원가량 되고 5대 금융지주사가 95조 원을 풀겠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가 300조 원이 넘는다. 건설 업계는 물론 부동산 시장에 치명타가 됐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나.
△건설 업체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존에는 ABCP를 발행했지만 요즘에는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이용한다. ABCP는 기업이 공시를 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의무가 있고 만기도 6개월~1년으로 상대적으로 길다. ABSTB는 공시 의무도 없고 만기도 1~2개월로 짧다. 금융시장이 정상적일 때는 만기가 짧아도 차환 발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레고랜드 사태 이후에는 만기가 짧은 것이 화근이 됐다. 매달 차환 발행을 해야 하는데 채권시장이 멈춰서면서 불가능해졌다. 금융 위기 때는 은행의 PF 대출이 많았는데 지금은 저축은행·신협·보험 등 2금융권이 많다. 이들이 갖고 있는 PF 대출이 전체의 60% 가까이 된다. PF 문제가 터지면 2금융권의 연쇄 부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금리는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침체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집값은 얼마나 더 내려갈까.
△주택 가격은 주기로 볼 때 금융 위기 이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승하기 시작해 문재인 정부 중반 정도부터는 최소한 상승이 멈춰야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시장에 무리하게 맞섰고 그 결과 집값을 가장 많이 올린 정부가 됐다. 집값이 두 배 이상 뛴 곳이 많았고 세 배가 된 곳도 있었다. 세종시나 대구처럼 다른 곳보다 더 많이 오른 지역의 집값이 지금 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하락 폭을 보면 기존 상승 폭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집값은 당분간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매매와 전세 모두에서 수요자는 넘쳐나고 공급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상황이 바뀔 수 있나.
△시장이 상승 기조이고 저금리일 때와 하락 기조이고 고금리인 때를 같은 잣대로 보면 안 된다. 전에는 수요가 많으니까 부족한 공급이 두드러지고 지금은 수요가 위축되니까 공급이 과도하게 많은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5년간 27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 물량을 줄여야 할까.
△노무현 정부 이후 문재인 정부까지 모든 정부는 연간 50만 가구 내외를 공급했다. 그렇게 보면 5년간 270만 가구는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다. 계획 물량을 줄일 것은 아니며 다만 공급 시기를 조절할 필요는 있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금융 위기 전에는 기준금리가 5.25%였다. 지금은 3.25%다. 그런데 시중금리는 오히려 지금이 그때보다 더 높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현재 8%대인데 당시에는 8%까지 올라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걷혀 시중금리가 정상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면 부동산 투자자가 대출금리와 투자수익률을 저울질해 시장 참여 여부를 결정할 것이고 그때 가서야 비로소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철저하게 친시장 정책을 펴고 시장이 자생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대해 대못질해놓은 것들이 많다. 지금 부동산 시장이 워낙 침체돼 있으니 이것들부터 서둘러 제거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할 때는 많은 사람이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생각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통령령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돼 있다. 결국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여소야대 상황이어서 쉽지 않다.
-정부가 대출 규제는 어느 정도 완화한 것 같다.
△탁상공론식 대출 규제 완화로 오히려 문제가 더 커졌다.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을 높여 수요자가 대출을 더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그대로여서 소득이 획기적으로 오르지 않는 한 소용이 없다.
-시급한 현안은 과도한 세금 규제 아닌가.
△세제는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부동산을 사고 보유하고 파는 모든 과정에서 매기는 세금이 너무 과하다. 종합부동산세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공시가 현실화율을 낮추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내려서 실질적인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는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세율 부분은 국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
-종부세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종부세는 원래 부유세 개념으로 시작했다. 정말로 부유세를 걷고 싶으면 자산가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처음에는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주택 소유자의 1%였다. 지금은 대상자가 130만 명으로 주택 소유자의 8%에 달한다. 많은 사람이 소득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종부세를 내야 돼 힘들어한다. 소득 대비 부담이 너무 큰 세금이 됐다. 징벌적 과세를 하면 안 된다. 여야가 1주택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을 11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마련 중인데 이런 식으로 고쳐서 쓸 것인지 아니면 아예 없앨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폐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집값이 앞으로 계속 더 내려간다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은 아마도 ‘영끌(영혼마저 끌어모아 대출)’한 2030세대일 것이다. 어떤 대책이 있을까.
△집을 산 2030은 말 그대로 가능한 모든 대출을 끌어모았다. 카드 빚까지 썼다. 한계상황을 감수한 채 대출을 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두 배 이상 뛰었으니 계산상으로는 무조건 파산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그래도 버틴 것은 집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집값이 급락할 때 60%가량은 집을 팔고 빠져나왔다. 빠져나오지 못한 나머지는 현재 부모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정부 대책은 사실 마땅한 것이 없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빚 탕감 방안은 집을 사지 않은 다른 2030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부동산 정책들을 되돌리는 일은 야당이 해야 할 것 같다. 야당이 결심할 수 있을까.
△야당은 스스로 지난 대선을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정권 교체의 가장 큰 이유로 보는 것이다. 종부세만 해도 야당이 과세 기준을 올리는 등 개선책을 강구하는 것을 보면 야당 지지자들도 종부세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다. 다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싶다면 야당이 부동산 규제 완화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기존 규제들을 모두 원점으로 돌려놓으면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되고 집값이 또 크게 오르지 않을까.
△지금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막아야 할 때다.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 시장이 정상을 되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다시 과열된다면 그때 가서 또 규제를 강화하면 된다.
◆He is…
1966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건국대 부동산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니혼대에서 학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목원대 조교수를 거쳐 2005년부터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인주택을 주제로 하는 고령자부동산론과 부동산학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현재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감정원 비상임이사, 국토교통부 공인중개사 정책심의위원회 위원, 서울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부동산학원론’ ‘노인주택 파노라마’ ‘엔딩노트’ ‘?지방소멸 어디까지 왔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