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증자에 참여하려는 태광산업(003240)의 계획이 트러스톤자산운용 등 소수 주주들의 반발로 무산되자 주주행동주의가 한층 힘을 받게 됐다. 대기업 오너나 지배주주에 맞서는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투자 전략이 정교해지면서 해외 기관투자가들도 이에 적극 가세하는 분위기다.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내년 초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소액주주들의 다양한 요구 사항이 폭발할 것으로 예상돼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태광그룹은 전날 흥국생명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28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당초 참여를 검토했던 태광산업은 빠졌다. 당초 태광그룹은 흥국생명 증자 규모를 약 4000억 원으로 잡고 그룹의 주력이자 현금 여력이 많은 태광산업을 동원하는 데 금융 당국과도 상당 부분 조율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복안이 8일 알려진 뒤 태광산업 지분 5.8%를 보유한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주주 대표소송을 포함한 법적 조치를 예고해 태광산업은 13일 예정한 이사회를 취소했다.
금융 투자 업계는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지분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증자 참여에 반대 이유가 됐지만 근본적으로는 태광산업이 1조 2000억 원에 달하는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갖고도 짠물 배당을 지속해온 것이 주주들의 반발을 산 배경으로 분석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태광산업은 10년간 겨우 150억 원을 배당했는데 이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흥국생명이 1년에 150억 원 가까이 배당한 것과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내년 2~3월 정기 주총을 앞두고 태광산업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배당 확대 요구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과 에스엠(041510)엔터테인먼트 간 대립도 내년 주총에서 한 차례 더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얼라인 측은 이수만 에스엠 창업자가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에 에스엠의 수익을 몰아줬다고 비판하며 10월 계약을 조기 종료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 측이 한발 물러서면서도 게임 업체인 컴투스를 백기사로 끌어들여 얼라인 측은 내년 초 주총에서 대주주 견제를 강화할 주주 제안을 검토 중이다.
VIP자산운용은 아세아(002030)시멘트와 아세아제지를 자회사로 둔 아세아그룹의 지주사인 아세아를 상대로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포함한 주주 환원율을 40% 이상으로 높이고 주주 정책을 사전 공시해 투자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업 오너 일가만 주주행동주의의 대상은 아니어서 글로벌 사모펀드도 주주들의 감시가 강화되는 추세다. 홍콩계 PEF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최대주주인 락앤락은 최근 실시한 과도한 배당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어피너티 측은 락앤락 인수 자금 중 절반가량인 3235억 원을 주식담보대출로 확보했는데 락앤락 주가 하락에 대출금 일부를 갚아야 할 처지가 되자 10월 총 830억 원의 분기 배당을 결의했다.
주총 의안 분석 기관인 ESG연구소는 “락앤락은 연결 순이익의 20% 내외를 배당한다는 계획이었는데 10월 배당 규모는 500%를 넘었다”면서 “과도한 배당금 지급에 지속 가능한 경영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민영화된 공기업인 KT&G(033780)는 싱가포르 기반 주주행동주의 펀드인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가 한국인삼공사의 인적 분할 상장과 비핵심 사업 정리, 잉여 현금 주주 환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플래쉬라이트캐피탈 펀드에는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상당수 출자하며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임세원 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