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와 기차, 자동차의 시대를 넘어 모빌리티가 이동의 미래로 떠오릅니다. 정부가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AM), 자율주행 차 등을 상용화하겠다고 공언한 시점도 수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만, 이 기술은 여전히 낯설고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일상에 필요한 모든 것이 짜먹기 간편한 스틱으로 나오는 요즘입니다. 기사들을 쓰고 읽으며 들었던 호기심에 대해 한 통만큼 취재한 다음, 한 스틱에 잘 담아내보겠습니다.
이번 주 미국자동차기술협회(SAE)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현재는 ‘SAE 인터내셔널’로 단체명을 바꾼 만큼 국제자동차기술협회라고도 불립니다) SAE라고만 하면 낯설지만 이 개념을 꺼내면 ‘아 여기였구나’하는 독자분들도 분명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SAE는 뉴스 기사 등에 자율주행하면 단골손님처럼 나오는 자율주행 레벨3, 레벨4와 같은 기술 고도화 정도에 따른 자율주행 기술 표준(ISO/SAE PAS 22736)을 만들어 전세계에 통용시킨 단체입니다.
이들이 방한한 주 목적은 산업통산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표준원)과의 업무협약(MOU) 때문입니다. 양 기관은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협약식을 가졌습니다. 현장에는 한국표준협회, 국제표준화기구(ISO), 자율주행 표준화 포럼 등에서 고위 관계자들도 참여했습니다. 양 기관은 향후 공동 워크샵·세미나 개최, 공통 관심 분야에 대한 간행물 개발 등 공동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자율주행차 관련 표준들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또 양국의 표준 개발 기관이 보유한 표준의 공동 활용을 지원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MOU를 체결하다 보니 구색도 갖춰야 하고요, ‘뽕을 뽑는다’는 말처럼 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최대한 시너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여러 사항에서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 중요한 지점은 역시 국제 표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협력 여지를 열어둔 것으로 보입니다. 양국이 서로의 표준을 갖다 쓰는 데야 MOU 없이도 얼마든 가능하기도 하고, 공동 연구야 MOU를 맺을 때 단골손님처럼 따라오는 것이니 말입니다. 알려진 자율주행 기술 단계 표준 외에도 아직 자율주행에 관련된 여러 기술 층위에서 세계적 표준이 정립될 것입니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통신의 보안, 차선 변경·신호 인지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을 때 이를 세계 정상에 세우려면 협상력, 정치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SAE와 마련한 이번 채널을 통해 표준원과의 협력을 강화한 것이 향후 국내 기술을 세계 무대로 밀어 넣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방문에서 SAE가 협약식만 하고 간 것은 아닙니다. 국내 자율주행 기술을 몸으로 느끼고 갔는데요, 국내 여러 자율주행 기술 업체 중 카카오모빌리티의 자율주행차를 시승했습니다. 단편적인 생각이지만, MOU 현장에 참가한 전문가 중 ISO 신임 회장이 현대차에서 자율주행 영역을 연구하는 현대모비스의 대표이사며, 포럼의 의장사도 현대모비스임을 고려할 때 현대차를 통해 체험해보리라 예측됐는데요, SAE가 선택한 곳은 카카오모빌리티였습니다. SAE는 이번 방한에 앞서 표준원에 국내 자율주행 서비스 업체를 만나보고 싶다고 전했고, 이에 표준원이 카카오모빌리티에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카카오모빌리티가 성남시 판교 인근에서 진행 중인 자율주행 서비스를 경험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에 한해 미국이 전세계를 주도하는 상황이지만, SAE는 서비스단의 사용자 친화성에 대해 훌륭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카카오T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자율주행차를 호출하고 승차한 뒤, 승객은 차량 내 모니터를 통해 자율주행차와 주변 도로 및 차량 통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시할 수 있는데, 도로 위 상황이 승객 친화적이고 직관성 있게 표시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표준원 관계자는 “주행 중 두 개 차선이 동시에 좌회전을 하는 교차로를 지날 때, 정상 주행 차로를 벗어나 좌회전을 시도하는 선행 차량을 인지하고 부드럽게 양보 운행을 한 상황에 대해 인상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