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일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신성장 4.0 전략’을 함께 공개했다. 정부가 내년도 경제 대계를 선보이는 날 별도의 산업 진흥 방안을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내년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잠재성장률을 밑돌 정도로 크게 후퇴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산업별로 ‘핀셋 전략’을 짜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디스플레이 투자 공제율 확대...‘제2 용인 클러스터’ 구축
정부는 주력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디스플레이 지원책을 첫머리에 올렸다. 반도체·2차전지·백신에 이어 디스플레이를 국가전략기술 반열에 올리는 게 대책의 핵심이다.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되면 대기업 기준 시설 투자에 들인 돈의 최대 12%(정부 세법개정안 기준)를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는 현재 공제 수준이 한 단계 낮은 신성장, 원천 기술(공제율 최대 6%)로 분류돼 있는데 정부안대로라면 지금보다 공제율이 두 배로 커진다.
기획재정부는 “주요국의 자국 산업 우선 전략이 확대되면서 우리 수출의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면서 “특히 중국은 대규모 투자로 디스플레이 등 우리 주력산업을 위협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 기술 격차를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은 지난해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42%로 우리나라(33%)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은 이미 장악했고 삼성·LG디스플레이가 양분하던 차세대 디스플레이(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마저 균열을 일으키고 있어 업계의 위기감이 크다.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부문은 기업의 국내 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해 반도체 전용 산업단지를 추가로 조성하기로 했다. 기술 유출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해외투자를 주저하는 기업이 국내로 발을 돌리게끔 유도하는 취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인사들을 만나보면 ‘현지에 공장을 신설하려 해도 국내에 지을 때보다 비용이 20% 이상 더 들어 고민이 많다’고 한다”면서 “인재 유출 문제를 걱정해 밖으로 나가기를 꺼리는 기업들도 적지 않은 만큼 정부가 판을 깔아주면 국내 투자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한 해 투자 증가분 공제율 10%...CVC 대상에 액셀러레이터 포함
정부는 주요 산업별 지원책을 마련하는 한편 관련 투자가 가능한 내년에 집중될 수 있도록 유인책도 내놓았다. 경기 부양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정부의 재정·금융 카드가 막힌 상황에서 기업마저 돈줄을 죄면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내년에 한해 투자 증가분(당해 투자액-직전 3년 평균 투자액)의 세액공제율을 10%로 늘리기로 했다. 현재 투자 증가분에 대한 공제율은 최대 4%다. 다만 한국은행이 내년 설비투자 증가율을 -2.8%로 예상하는 등 다수의 기관이 역성장을 점치는 터라 별다른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경기 한파에 자금 조달이 특히 어려워질 벤처기업 지원 방안이 담겼다. 정부는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세울 때 액셀러레이터(창업 3년 이내 초기 창업자를 대상으로 투자하는 사업자) 형태로도 설립할 길을 열어두기로 했다. 대기업 자금이 벤처 산업으로 흘러갈 창구를 다양화하기 위해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는 CVC를 제한적으로 보유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와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로 형태가 한정된다.
인력 중심 물류 체계 탈피…발사체 개발에 2조 투입
정부는 자율주행과 우주탐사, 차세대 원자력발전 기술을 포함한 총 15개의 신기술 관련 프로젝트를 내년부터 가동하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은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10년 내 인력 중심의 물류 체계를 탈피하겠다는 구상이다. 로봇이 항만에 들어오는 물건을 실어나르면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화물차가 전국 각지로 이를 옮기는 식이다. 정부는 2029년까지 부산항 신항과 진해 신항을 하역 작업을 자동화한 ‘스마트 메가포트’로 탈바꿈시키고 2030년까지 전국 도로에 자율주행 인프라(C-ITS)를 구축할 계획이다. 운전자 없는 화물차가 도로를 달릴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 화물자동차운수법도 개정한다.
2032년 발사를 목표로 달 착륙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 역시 내놓았다. 발사체를 만들기 위해 당장 내년부터 10년간 2조 원을 투입할 예정이며 착륙선 사업비로 6286억 원을 책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