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신선한 채소를 먹기 위해 시작한 텃밭이었다. 그런데 작은 텃밭은 먹거리뿐 아니라 필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만큼 텃밭을 가꾸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삶의 경험이었다. 일단 업무 중심이던 삶의 패턴이 ‘자연의 사이클’에 맞게 개조됐다. 해뜨기 전 밭일을 시작했고 볕이 내리쬐는 정오에는 일을 멈췄다. 관점도 달라졌다. 식탁에 놓인 모든 게 생명이니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모든 음식에는 누군가의 땀방울과 자연의 도움이 깃들었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운 감동이 있었다. 그렇다. 주말 텃밭은 필자의 삶에 ‘농경감수성’을 더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변화시킨 것이다.
최근 들어 먹거리로 진출한 정보기술(IT)은 하루가 멀다 하고 스마트 농법, 푸드 로봇, 대체식품 등 생산성과 편리성으로 무장한 첨단 기술을 선보인다. 어쩌면 고무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폭발적인 첨단 기술은 당장의 풍족함은 제공하겠지만 인류의 DNA 속, 유구한 시간 동안 흘러온 농경의 기억들을 지워버릴지도 모른다. 고작해야 작은 텃밭의 주인이자 주말 농부인 필자부터도 기술로 대체될 수 없는 농사의 숭고함이 사라질까 우려가 앞선다.
그렇다면 미래의 먹거리는 꼭 첨단이어야만 할까. 이러한 의문에 ‘푸드+테크’가 아닌 ‘로컬+푸드’라는 해법을 찾는 주장이 있어서 반갑다. 세계적인 석학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농경의 미래가 푸드 ‘테크’가 아닌 인류의 지성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속 가능한 미래는 새로운 과학기술과의 결합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단축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현재의 글로벌 생산과 유통 시스템에서 벗어나 로컬리티(지역성)를 살려보자는 제안은 비단 식량의 문제뿐 아니라 예술계에도 유효하다.
예술 분야 또한 지역의 고유성을 보존하고 시민이 주체가 되는 로컬의 가치보다는 맹목적으로 국제화와 첨단산업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도 ‘지역사회 기반 또는 지역 밀착형’이라는 표어를 자주 내세우면서 정작 시민의 삶과 연관성을 갖지는 못한다. 따라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로컬의 콘텐츠는 매우 소중하다.
서울 연남동 일대 작은 갤러리들이 연합해 만든 ‘연희아트페어’와 성동구의 ‘아트성수’ 등이 로컬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술관, 갤러리, 대안 공간 등 예술 공간이 연대해 마이너리티의 힘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자생하는 로컬의 콘텐츠들이 오래가지 못한다. 성공적일수록 시·도·군에 흡수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공동체만이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며 커뮤니티를 확장해갈 수 있다. 생명력을 잃는 수많은 지역의 행사를 관(官) 주도로 만들기보다는 자생하는 로컬 콘텐츠를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고 말한다. 예술 또한 내면을 채우는 먹거리 아닌가? 로컬의 미술관을 재발견해보고 거기서 건강한 영혼의 먹거리도 발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