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개최한 기자단 송년간담회에서 “거의 모든 나라가 누군가와는 헤어진다고 생각하는 ‘헤어질 결심’을 했다”며 “글로벌 시장이 하나였다가 쪼개지고 ‘내 거’를 강화하는 보호무역주의 형태가 나타나면서 시장 변화가 따라 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도 노력을 하겠지만 솔직히 그런 문제에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 있다. ‘헤어질 결심’(공급망 붕괴)에 따른 후속 조치들이 터져 나가는 것이니 어쩔 방법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 회장은 이를 두고 현재 글로벌 시장 상황을 영화 제목에 빗대 ‘헤어질 결심’이라고 표현했다. 미·중 갈등을 비롯한 국가별 보호무역주의 영향으로 하나로 묶여있던 글로벌 시장이 다수로 쪼개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 회장은 “이제는 작은 시장도 개척하고 우리 것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의 위기가 가속화되면서 시장이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분산되기 시작했고, 이는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에 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의 해법에 대해 최 회장은 “지금까지는 제품을 잘 만들어서 싸게 만들면 팔렸던 이야기가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됐다”며 “이제는 시장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보고 있지 않았던 시장까지 봐야만 하는 걸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예를 들면 아프리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 지금까지는 비용이 많이 들고 이익도 별로 안 남을 것 같다고 생각해 (사업 대상에서) 제외하는 형태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럴 형편이 아니다”라며 “아프리카 뿐 아니라 남미, 작은 나라 등 전부 챙겨야 될 사정”이라고 강조했다.
보호무역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의 대응 방안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자체 법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목적이 있는 거니 ‘아예 하지 말라’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대신 그것을 적용할 때 (국가·기업에 대한) 차별화가 심해지면 그것은 미국에게도 좋지 않다고 설득하고 차별화 조항과 형태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제품을 차별할 무언가를 만들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는 만큼 (각 나라들과) 신뢰 관계를 잘 확보해야 하는 게 한국의 과제”라며 “올해 미국에 3번 갔는데 매번 워싱턴을 가서 누군가를 만나 설득하고 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의 총수, 사장들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뛰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대응 능력에 대해 “솔직히 웬만한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 기업이 민첩하고 빠른 속도로 쫓아갈 것”이라며 “우리 기업은 잘할 수 있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대한상의가 민간에서 힘을 쏟고 있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 경쟁의 현재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치 활동을 통해 각국과 접촉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접점이 되고 있다. 무엇인가 협력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나갈 관계를 맺어나가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며 “그런 각도로 볼 때 한국이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찌 보면 사우디가 할 수 있는 건 갖고 있는 자원을 레버리지로 활용하거나 돈을 얼마를 투자해줄게 이런 형태”라며 “관계를 장기적으로 가져가는 형태로 보면 한국의 필요성이 높고 더 잘 먹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법인세 인하 문제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인하하는 게 무조건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무차별적으로 다 인하한다, 이게 과연 좋은 건가라는 생각은 있다. 한국이 어떤 산업을 키우고 싶은 거냐, 어떻게 하는 게 우리한테 전략적으로 좋고 미래 경제발전과 성장을 이룰 수 있냐 이런 게 관건이 되는 것이고 여기에 맞춘 맞춤형 형태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고용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규직화, 고정적 월급이 최상인 것처럼 된 고정관념 형태가 돼 있다”며 “이제는 콘셉트를 바꿔서 고용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게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용도 훨씬 더 많이 풀릴 수 있고 사회도 안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SK그룹의 예를 들면서 “고용의 패턴이 유연해지면 지금과 같은 대립적 형태를 가져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며 “(SK그룹 계열사들의) 노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협조하면 더 좋아진다’라고 생각하는 기본 틀을 갖고 문제를 풀면 양쪽이 더 좋아질 수 있는 방안이 나온다”고 조언했다.
최 회장은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사례처럼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창업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보이기도 했다. 최 회장은 ‘30년 간의 기억을 갖고 3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창업이라는 도전을 했을 것 같다”며 “저도 (선대로부터) 있던 사업을 받은 형태가 되다 보니 원래 있던 문제점이나 해보려는 것들이 잘 안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젊어진다면 ‘나는 내 거를 해보겠다’라며 도전을 할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업황 부진에 놓인 반도체 시장과 관련해서는 “꽤 어려운 얘기인데 업계 전체적으로 안 좋아질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장기적으로 보면 반도체 시장의 ‘업 앤 다운’은 계속 있어 왔고, 요즘은 사이클이 짧아졌다. 많이 나빠지면 많이 좋아질 것이고 (반등에) 그렇게 오래 걸리리라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