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내년에도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을 운용하기로 하면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다만 내년에는 금리 인상 횟수보다는 최종금리 수준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하게 될지가 관건이다. 최종금리 수준에 근접한 만큼 높은 금리를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긴축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물가와 함께 경제 상황, 환율까지도 고려해 최종금리 수준이나 유지 기간을 정하겠다고 공식화했다.
23일 한은은 ‘2023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을 통해 “기준금리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0%)에 수렴해 나갈 수 있도록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둔 운용 기조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은 2014년 이후 7년 동안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했지만 지난해부터 ‘통화정책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정’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내년 1분기 중 기준금리를 한두 차례 추가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통위원 대다수가 현재 기준금리(3.25%)보다 0.25%포인트 높은 3.50%를 적정 최종금리로 봤기 때문이다. 나머지 금통위원 2명도 최종금리는 3.75% 이상이 적정하다는 의견이다. 내년 초 발표되는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5% 안팎 수준이면 추가 인상을 피할 수 없다.
금통위의 진짜 고민은 기준금리가 3.50%까지 오른 이후다. 금리를 3.75%보다 더 올리면 물가는 확실히 잡을 수 있겠지만 이미 하락세가 뚜렷한 경기를 짓누를 수 있는 탓이다. 반대로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빠르게 완화 기조로 돌아선다면 물가가 다시 올라 더 강한 긴축으로 경기를 크게 악화시키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20일 “정교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제는 물가나 금융시장·성장률·환율 등 각종 경제지표가 뒤엉켜 어느 한 방향으로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률은 점차 낮아지겠지만 국제유가, 환율,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 폭, 국내외 경기 둔화 등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상·하방으로 동시에 움직이면서 둔화 속도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이날 한은이 “최종금리 수준, 동 수준의 유지 기간 등은 물가 흐름과 함께 경기, 금융·외환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결정하겠다”고 한 것은 이러한 복잡한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또 다른 통화정책 목표인 금융 안정을 저해하는 부동산 경착륙도 신경 써야 한다. 한은은 가계부채 리스크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비은행금융기관의 유동성, 신용 리스크 증대 등을 여러 각도에서 점검하면서 시나리오별 대응 계획을 점검·보완해 필요하면 추가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조치는 지원 효과와 시장 회복 수준을 보고 연장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한은은 내년 초 만기가 돌아오는 말레이시아(2월 2일), 호주(2월 5일), 인도네시아(3월 5일)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 연장을 추진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출자할당액(쿼터·quota) 증액 등 글로벌 금융안전망 강화 논의에도 적극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거시경제금융회의 등을 통해 정책 당국과 긴밀한 정책 공조를 지속할 것을 이례적으로 명시화했다. 이외에도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도입 기반 확충, 한국주택금융공사 추가 출자 등 가계부채의 질적 개선 등을 내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으로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