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웅' 정성화의 오래된 꿈, 날개를 달다

영화 '영웅' 정성화 / 사진=CJ ENM 제공

뮤지컬 배우 정성화에게는 오래된 꿈이 있다. 할리우드의 작품처럼, 한국에서도 오리지널 뮤지컬이 영화화되는 것이다. 영화 '영웅'을 통해 마침내 그 꿈을 이룬 그는 이제, 새로운 소망을 품기 시작한다.


'영웅'(감독 윤제균)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김승락)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정성화)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다.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마음먹고 우덕순(조재윤), 조도선(배정남), 유동하(이현우), 마진주(박진주) 등과 함께 거사를 준비한다. 안중근은 그토록 바라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데 성공하지만, 일본에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는다.


대한민국 최초로 오리지널 뮤지컬을 영화화한 '영웅'. 뮤지컬과 영화를 잇는 구심점은 정성화다. 그는 2010년부터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을 연기하며 명실상부 안중근으로 대두되는 배우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이런 그가 영화라는 새로운 극에 도전하게 된 건 윤 감독의 제안 때문이었다.


"2015년쯤 감독님이 뮤지컬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그때 저에게 '뮤지컬로만 있기 아까운 작품이다.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좋았죠. 그리고 다음 시즌 공연에 또 오셔서 보고 가셨죠.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에게 부채의식을 느낄 수 있어요. 마침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았어요. 누가 안중근 역을 맡던 내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죠.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저보고 안중근 역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얼떨떨한 마음이었습니다."



영화 '영웅' 스틸 / 사진=CJ ENM

영화에서 안중근을 맡는 건 정성화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첫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화, 첫 영화 주연이라는 타이틀이 무겁게 느껴진 것이다. 그러나 정성화는 이내 부담을 떨쳐내고, 주변의 의심을 떨쳐내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감독님이 체중을 감량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때 86kg이었는데, 72kg까지 14kg을 뺐어요. 요즘에는 30kg씩 살을 빼는 연예인도 많으니 대단한 게 아닌 것 같지만,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죠. 당시 공연과 병행하고 있어서 더 어려웠어요. 아예 음식을 안 먹으면 공연에 지장이 생기니 덜먹고 많이 뛰는 방법으로 감량할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이후 정성화는 무대와 다른, 스크린 연기라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윤 감독이 6개월 동안 수정한 시나리오는 무대의 대본과 많이 달랐다고. 무대 공연은 음악적 부분이 강조된 만큼, 설명이 덜 된 부분이 있지만, 시나리오는 그렇지 않았다.


"시나리오에서는 갑자기 바뀌는 신에서 어색함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관객에게 물음표가 떠서도 안됐죠. 달라진 대사도 있었고, 추가된 대사도 있었어요. 안중근이 동생에게 유언을 남기는 건 공연에는 없는 장면이에요. 설희 부분은 디테일하게 바뀌었고, 중국인 링링과 왕웨이는 한국인 캐릭터가 됐어요. 안중근 기념관에 방문해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새 작품 준비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감정을 몰입하는 방식도 무대 연기와는 달랐다. 정제된 음향과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갖춰진 무대에서는 음악이 중요하지만, 스크린에서는 섬세한 감정 표현이 선행돼야 했다. 조금이라도 거짓된 감정이 나오면, 큰 스크린에서는 들통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금이라도 감정이 덜하면 감독님이 바로 잡아내시더라고요. '마음에 오는 게 없다. 무슨 생각했냐'고 하셨죠. 저는 어떻게 하면 노래가 대사처럼 들릴까를 많이 고민했는데, 대사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무대에서는 큰 목소리로 노래 불렀다면, 영화 현장에서는 공간을 계산하면서 불러야 됐어요.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게 달랐죠."




정성화는 현장 라이브 방식으로 녹음하는 것도 어려운 점 중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무대에서는 목소리에 리버브가 걸려서 나왔다면, 영화 현장에서는 목소리 수음을 위해 효과가 걸릴 수 없었다고. 인이어에는 오직 반주와 생 목소리만 들려왔고, 정성화는 스스로 노래를 못하는 것처럼 느껴져 애를 먹었다.


"초반에는 정말 적응이 안 됐어요. 그러다가 중반부터 적응이 조금씩 되더라고요. 영화 찍기 전에 분명 짐작을 했지만, 막상 닥치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하다 보니 조금씩 노하우가 생겼고, '내가 하는 게 잘못 부르는 게 아니야'라고 스스로 믿음을 주면서 하려고 했어요."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하면 정성화를 떠올릴 거다. 정성화는 이런 수식어에 대해 부담스러움을 토로했다. 독립군으로 일본에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분과 자신이 비교되는 건 어깨가 무거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건 자신을 투영해 사람들에게 안중근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저 스스로 그분과 동일시한 적은 없어요. 굉장한 문인이자 철학가잖아요. 뮤지컬에서 '나라 잃은 청년들은 일찍 철이 든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당시 31살이었던 안중근 의사가 지금의 나이 많은 어르신보다 철이 더 들었고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게 놀랍죠. 저 스스로 반성도 많이 돼요. 그분에게까지 도달하긴 어렵겠지만, 항상 발전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안중근을 연기한 정성화. 같은 배역으로 같은 노래를 계속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그는 작품 자체가 너무 어렵기에 매너리즘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는 아직도 '영웅'을 위해 레슨을 받고 있다고.


"'영웅'의 넘버가 오디션 금지곡이라고 불릴 정도로 난이도가 있어요. 저도 200회가 넘게 공연을 했는데, 한 번도 만만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죠. 특히 공연이 후반부로 갈수록 안중근 역이 책임져야 될 게 많거든요. 거기서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저하되면, 섬세한 음에서 무조건 탈이 나게 돼 있어요. 매번 도전하는 느낌으로 공연에 임하고 있죠."


'영웅'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정성화는 한국의 오리지널 뮤지컬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뤘다. '영웅'이 사랑을 받아서 한국 뮤지컬 영화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음 작품, 다다음 작품도 뮤지컬 영화로 선보였으면 좋겠어요. 뮤지컬이 영화가 됐으니, 반대로 영화가 뮤지컬이 되면 어떨까 하는 꿈도 꿉니다. 예를 들어 '라라랜드'를 무대에서 하는 것처럼요. 전 '영웅'으로 오랜 숙원을 이뤘고, 새로운 장을 열게 됐어요. 신기하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영화 ‘영웅’ 영상리뷰 / 영상=유튜브 채널 ‘오영이무비’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