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MB)·기가(GB)는 데이터 용량 단위로 익숙하다. 일상에서 인터넷과 컴퓨터 등 정보통신 기기는 정보처리 용량이 큰 것이 암묵적으로 선호된다. 최근 수조 단위 규모의 중동 지역 프로젝트를 표현하는데 메가를 넘어 기가라는 단위가 사용되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진되는 네옴(Neom), 홍해 프로젝트 등 대형 프로젝트는 기가 프로젝트로 통칭된다.
중동에서 여행하거나 일하다 보면 우리 기업들의 땀과 열정이 담긴 건물을 방문하거나 도로를 달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 지긋한 중동 사람들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밤과 새벽에 횃불을 들고 일하면서 공기(工期)를 맞췄던 한국인의 근면함을 증언한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우리 기업의 로드쇼 발표를 본 사우디 국토물류부의 젊은 공무원은 아버지에게 그 내용이 맞는지 확인했다. 이러한 것들은 중동 프로젝트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쌓아 올려온 공든 탑이다.
중동 프로젝트 시장은 재정 여력이 양호한 산유국과 비산유국으로 양분된 모양새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 등 산유국은 과거의 단순 도급형에서 한 걸음 나아가 에너지 다변화, 디지털 전환 등을 위한 메가나 기가 투자형 프로젝트를 도입하고 있다. 자국 산업 육성, 기술 이전, 고용 창출 등 복합 효과를 꾀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과거 척박한 환경에서 노력과 끈기만으로 만들어냈던 신화가 그대로 반복될 수 없다는 점을 알려준다.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였던 영역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터키·인도·그리스 등 경쟁국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신(新)중동붐은 과거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화석연료 고갈을 앞두고 올해 이집트와 내년 UAE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COP)를 연속 개최하는 중동 입장에서는 단계적 개선을 넘어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혁신이 간절하다. 실례로 중동에서 화두가 되는 넷 제로(Net Zero) 수직 도시 네옴, 바다 위의 그린수소단지 옥사곤(Oxagon) 등은 스마트 시티, 그린에너지, 교통 분야의 최첨단 기술이 결합된 융복합 프로젝트로 혁신과 창의적인 제안이 요구된다.
이런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기업은 소프트 파워의 위력을 키우고 극대화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프로젝트 금액 규모에 유혹되기보다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요구되는 무형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과거 중동 프로젝트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흘린 땀과 열정으로 세웠던 공든 탑 위에 새로운 혁신과 소프트 파워를 합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제조업에서 수직과 수평적 공급망 구축이 경쟁력의 핵심인 것처럼 프로젝트 관련 기업들은 협력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원활한 수직 협력은 기본이며 중동 현지 기업과 경쟁 기업 간의 다각적인 수평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과거 중동 프로젝트 시장에서 낙찰에 웃고 손실에 고개를 떨구며 떠났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메가·기가라는 미사여구에 끌리기보다 냉정하게 사업 타당성 분석을 해야 한다. 국내 상황이 어려울 때 고개 돌리는 시장이 아닌, 장기적 차원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중동 문화에 대한 호의적이고 개방적 태도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은 깜짝 놀랄 정도다. 한국인의 신념과 가치관의 총체인 한국 문화에 마음을 열어준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 호혜적 관계가 돈독해지면 스폰서십은 파트너십으로 바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쟁은 시장의 기본 작동 원리이지만 때로는 경쟁자 간의 협력이 더 큰 이익을 창출하게 해준다는 점을 잊지 말자. 대중소기업, 정부 부처와 지원 기관 등이 ‘팀 코리아’로 함께하면 홀로 중동에 가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생길 것이다.
중동 지역은 척박한 고온의 불모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겨울철에는 부드러운 공기에 촉촉한 비가 내려 땅을 적신다. ‘1+1=2’라는 상식만으로 모래사막 위에 마천루를 세울 수 없다. 어린아이의 눈처럼 ‘1+1=11’을 만드는 새로운 시각을 갖춰 새해에는 중동 프로젝트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종횡무진으로 활약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