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스퀘어(402340) 계열 e커머스 업체 11번가가 내년에 코스피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고금리와 불경기로 e커머스 투자 심리가 후퇴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새마을금고 등 재무적 투자자(FI)와 ‘2023년 9월까지까지 상장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속도전’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IPO 시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시장에선 “지분 매각이나 투자 유치로 방향을 틀지 않겠냐”는 관측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하형일 11번가 사장은 “2023년은 본격적인 ‘11번가 2.0’가 실행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플랫폼 경쟁력과 잠재력을 기반으로 IPO와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내년까지 IPO를 끝마치겠다’는 의지를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11번가는 지난 8월 한국투자증권과 골드만삭스를 대표 주관사로, 삼성증권(016360)을 공동 주관사로 선정하며 IPO 작업에 착수했다.
11번가는 내년 9월 30일까지는 상장을 마쳐야 한다. 11번가는 지난 2018년 9월 SK플래닛에서 분사한 직후 국민연금·새마을금고와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가 참여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 원을 투자받으면서 2023년 9월까지 IPO를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은 11번가의 기업가치를 2조 7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만약 기한 내에 상장하지 못하면 FI 측에서 대주주인 SK스퀘어 지분까지 묶어 팔 수 있는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조항까지 넣었다. 드래그얼롱은 소수 주주가 지배주주 지분까지 가져와 제 3자에게 팔 수 있는 것을 말한다.
11번가 입장에선 △기한 내로 상장을 완료하거나 △FI에게 기한 연장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한을 늘리려면 FI 중에서도 국민연금을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11번가에 3500억 원을 투자해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의 전체 출자액(5000억 원) 상당수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측에서는 “기한 연장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I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11번가가 내년 IPO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11번가는 내년 초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하고 IPO 절차에 본격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11번가가 IPO를 완료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쟁 업체인 컬리도 IPO 완료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공모주 투자자들의 ‘e커머스 기피’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IPO 시장 회복세가 요원하다는 것도 문제다.
IPO 시장 위축을 고려하면 11번가가 상장보단 지분 매각이나 투지 유치로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SK스퀘어가 11번가·티맵모빌리티·원스토어 등 기존에 IPO를 계획했던 계열사들의 상장이 어려워지자 이들의 지분을 파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계열사인 SK쉴더스의 경우엔 올해 IPO가 무산되면서 스웨덴 발렌베리그룹 계열 PEF 운용사인 EQT파트너스의 투자를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SK쉴더스는 지난 5월 원스토어와 함께 상장을 추진했다가 수요예측 부진으로 공모를 철회하면서 국내 IPO 시장 침체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