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의사 없는 응급실 수두룩…의대 정원 논쟁 재점화

[K바이오 결산 2022]
<2> 수면 떠오른 필수의료 민낯
전공의 부족해 소아과 진료 중단
뇌출혈 간호사 수술 못받아 사망
격무·고위험에 필수의료 붕괴 위기
의대정원 확대 등 해법 나오지만
의사단체 결사 반대 갈등 불씨 여전

서울 이촌동의 대한의사협회에서 16일 열린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등 3개 단체 합동 기자회견에서 한 의료계 관계자가 소아과 진료 대란 우려를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의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른바 '빅 5' 병원조차 뇌출혈, 심근경색 등 골든타임이 중요한 중증 외과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탄식이 의료현장 곳곳에서 나왔다. 최근엔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던 한 대학병원이 소아과 입원진료를 중단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의대 정원 확대, 수가제도 개편 등 의료계 해묵은 난제들에 대한 사회적 토론 필요성이 강력 제기되고 있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이달 초 전국 수련병원 96곳을 대상으로 긴급 조사를 시행한 결과 75%가 내년부터 진료를 축소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응급진료 폐쇄 및 축소(61%) △입원 축소(12.5%) △중환자실 축소(5%) 등 순서로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레지던트) 부족에 따른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의 당직이 2년을 넘어서며 한계에 도달한데다 내년도 전공의 지원율이 더욱 하락해 진료 축소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란 게 학회의 진단이다.


전국 수련병원의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80%로 처음 미달한 뒤 2020년 74%, 2021년 38%, 2022년 27.5%로 하락을 지속하다 2023년 전반기 역대 최저 수준인 15.9%까지 내려앉았다. 소청과 수련병원 66곳 중 55곳은 지원자가 단 1명도 없었고, 빅5 중에서도 서울아산병원을 제외한 4곳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2020년 전기 모집 때부터 4년 연속 소청과 전공의를 받지 못한 가천대 길병원은 이달 12일부터 소아 입원진료를 잠정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에서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대목동병원, 한양대병원 등이 야간진료나 소아 환자 응급실 진료를 전면 중단 또는 축소한 상태다.


소청과 의료진들의 이탈이 가속화한 이유로는 초저출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며 환자가 급감하고 수익성이 악화한 점 등이 거론된다. 생명을 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필수의료 분야에 제 값을 쳐주지 않는 현행 의료제도도 한 몫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소청과와 함께 필수 진료과로 꼽히는 흉부외과(60%), 외과(67%), 산부인과(79%)도 미달을 면하지 못했다.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수익은 저조하고 의료소송 등 위험 부담이 커 지원자가 적다. 수련 과정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보니 이들 진료과목의 전문의와 교수들의 업무 부담이 높아지고 근무환경이 열악해지는 악순환에 처했다. 이는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태에서도 지적됐던 문제다.


기피 진료과로 전락한지 오래인 흉부외과는 당장 2년 뒤부터 배출되는 전문의보다 은퇴자 수가 많은 역전현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배출된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20명으로 1993년(57명)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현재 진료를 하는 65세 미만 흉부외과 전문의 1161명 중 50세 이상이 707명(60.8%)으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현직 흉부외과 전문의의 28%에 달하는 436명이 10년 이내 정년 퇴직하는데 전공의 지원율은 매년 미달 사태를 반복해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직후 의료계와 협의체를 꾸리고 ‘필수의료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4개월 만에 나온 지원대책 초안에 대해 정작 기피 진료과 의료진들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김지홍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이사장(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은 “전공의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과 수가 정책의 변화 없이는 위기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2·3차 병원의 입원 및 진료 수가를 2배 인상하고 고난도·중증·응급질환의 경우 전문의 중심 진료 체계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해법 중 하나로 의사단체가 결사 반대하는 '의대 정원 확대' 주장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또 다른 갈등의 불씨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3일 성명을 내고 "필수의료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숫자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는 2020년 정부가 내놓은 ‘의대정원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방안’에 반발해 집단 휴진에 나선 바 있다. 일부 의대생들은 그해 9월로 예정돼 있던 국가고시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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