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 중구 소월로 남산 자락에 자리한 밀레니엄 힐튼 서울. 로비에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니 많은 사람이 미니어처로 꾸민 마을 모형과 그 사이를 달리는 열차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1995년부터 매년 발차식까지 열어가며 겨울 시즌을 알려 온 밀튼(밀레니엄 힐튼)의 명물, ‘자선 열차’ 전시 현장이다. 알프스 마을을 연상하게 하는 배경부터 각양각색의 건물, 그 안의 사람들까지… 마치 동화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은 미니어처와 그 사이사이를 내달리는 정교한 기차는 매년 이 호텔 투숙객은 물론 연말 분위기를 내려는 방문객에게 사랑받아온 ‘사진 명소’이기도 하다. 특히 주변 이웃에 전달할 후원금을 모으면서 기부 기업·업체 이름을 모형 곳곳에 간판처럼 내걸어 ‘따뜻한 겨울’의 상징이 되기도 했으며 서울을 시작으로 힐튼 상하이, 힐튼 나고야 등 세계 각지의 힐튼 소속 호텔로도 퍼져나가 의미를 더했다.
이 자선 열차는 올해 유독 많은 방문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1983년 문 연 호텔이 오는 31일까지만 영업하게 됐기 때문이다. 마지막 운행이 아쉬운 건 방문객뿐만 아니라 2008년부터 10년 넘게 열차 전시를 맡아 온 은혜민 CDA대표도 마찬가지다.
은 대표는 1995년부터 20년 넘게 한국 자선열차 제작을 담당한 제럴드 D맥엘리고트씨의 팀원으로 2008년 합류한 뒤 2020년부터는 프로젝트를 아예 넘겨받아 전시를 주도해 왔다. 대학생 때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 업(業)이 됐다. 은 대표에 따르면 힐튼의 자선열차 전시 준비에는 최소 한 달의 기간이 소요된다. 전시장 곳곳을 채운 건물과 디테일에 감탄이 터지는 사람 모형은 2020년까지 ‘재활용’ 없이 매년 새로 만들 만큼 시간과 노동을 많이 투입했다. 호텔 지하 1층에 하얀 천막을 둘러친 뒤 몇 주에 걸쳐 선로를 깔고, 주변 풍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은 씨는 “10여 명이 천막 안에서 하나의 미니 도시를 건축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운행’을 앞두고 호텔도, 은 대표도 고민이 많았다. 소중한 30여 년 추억을 담아 ‘의미 있는 작별’을 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올해는 특별히 지하 로비 분수대에 탑을 쌓아 호텔 모형을 세워뒀다. 은 대표에 따르면 전시 시작 전날 밤 로비에 공개된 열차와 미니어처를 보고 호텔 직원들은 감상에 젖어 한동안 그 장소를 떠나지 못하거나 사진을 남기며 아쉬움을 달랬다고 한다.
지형지물부터 그 안의 사람, 움직임까지. 은 대표에게 매년 연말 돌아오는 작업은 ‘한달간 작은 세계’를 만드는 일이었으며, 그렇게 내달린 기차에는 한 호텔의 역사와 이웃들의 온정이 담겨 있었다. 은 대표는 “자선열차 제작은 일본 힐튼에서 계속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며 “한국에서도 언젠가 다시 이 열차가 달릴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