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설득 → 속전속결…2년만에 '佛치병' 고친 마크롱의 뚝심

[2023 신년기획-尹정부 2년차, 4대개혁 적기다]
1부: 노동개혁 30년, 퇴로 없다-<2> 선진국은 어떻게 성공했나
올랑드 임기 1년 남기고 개혁 시도
연장근로 확대 등 독단적으로 추진
국민 공감대 형성 실패…與도 외면
마크롱, 취임 석달만에 개혁안 발표
정권 초기 노동개혁 골든타임 잡아
해고 재판 간소화 등 기업부담 줄여
佛 2018~2021년 성장률 獨 웃돌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2016년 6월 14일 노동총연맹(CGT) 노조원들이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대통령의 노동법 개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010년대 중반까지도 프랑스는 강성 노조에 휘둘려 저성장·고실업에 허덕이는 ‘유럽의 병자’였다. 고질적인 병폐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 대통령들이 시도한 노동 개혁은 높은 수준의 정규직 보호와 강력한 노동조합의 입김, 파업·시위에 관대한 문화에 밀려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경제는 활력을 잃어갔다. 2015년 기준 프랑스 경제는 실업률이 4년째 10%를 넘어서고 성장률이 1%를 간신히 넘길 정도로 빈사 상태에 빠졌다. 보다 못한 유럽연합(EU) 집행위가 프랑스 정부에 노동 유연성 제고를 골자로 한 노동 개혁을 강력 권고했을 정도다.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대통령(2012~2017년 재임)과 그 뒤를 이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노동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두 정권이 착수한 노동 개혁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다. 주 35시간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등 과감한 개혁을 밀어붙인 올랑드가 4%라는 최악의 지지율 속에 정권을 잃고 사회당의 몰락마저 초래하며 ‘개혁의 실패자’로 남은 반면 호평 속에 개혁을 관철한 마크롱은 경제 회생을 이끌어낸 끝에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 프랑스 대통령이 됐다. 두 대통령이 정치 생명을 걸고 추진한 노동 개혁의 명운은 어디서 갈라진 것일까.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 2016년 10월 28일 파리에서 열린 경제사회환경위원회(CESE) 헌법 규정 7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프랑스에서 17년 만에 탄생한 좌파 정권을 이끌던 올랑드가 본격적인 노동 개혁을 추진한 것은 임기가 끝나기 1년 전인 2016년 초였다. 집권 초 60%대였던 지지율이 장기 불황 여파로 1년 만에 20%를 넘나들기 시작하자 올랑드는 정치 생명을 건 실업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실업률이 10%대에 머무는 와중에도 대부분의 재임 기간 동안 개혁은 뒷전이었다. 결국 그가 국제통화기금(IMF)과 EU 집행위 등의 끈질긴 권고를 받아들여 노동 개혁의 칼을 뽑아 든 것은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지지율이 20% 아래로 추락한 시점, 정권 기반이 약화할 대로 약화한 때였다.


그해 2월 올랑드 정부가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 해고 배상금 상한 도입, 연장 근로시간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개혁법 예비 법안, 이른바 ‘엘콤리법’을 제출하자 프랑스는 발칵 뒤집혔다. 사회당의 지지 기반인 노조는 진보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내놓은 강경안을 ‘배신’이라고 여겼다. 국민의 67%가 법에 반대할 정도로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심상치 않은 반발 기류에 정부는 부랴부랴 노사 협상을 거쳐 수정안을 내놓았지만 강성 성향의 제1노조 노동총연맹(CGT)은 법안 철회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7월 초까지 이어진 10여 차례의 시위에 총 437만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적인 철야 시위, 정유 공장 봉쇄, 병원 파손까지 잇따르면서 시위는 갈수록 극단화했다.


올랑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야당은 물론 여당인 사회당마저 등을 돌린 노동법 개정을 강행하기 위해 헌법상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직권으로 엘콤리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해고 배상금 상한이 빠지는 등 초안보다 적지 않게 후퇴한 데다 의회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처리한 법은 노사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2016년 말 지지율이 4%까지 추락한 올랑드는 결국 재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이 첫 임기 이후 재선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약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당한 변화를 담은 법안을 끝끝내 통과시켰음에도 올랑드의 개혁이 ‘실패’로 기억되는 이유다.



2015년 7월 31일(현지 시간)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당시 프랑스 경제장관이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대통령과 엘리제궁에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랑드의 뒤를 이은 마크롱 대통령은 ‘여론 설득’과 ‘빠른 속도’라는 두 가지 요소에 집중했다. 올랑드 내각에서 경제장관을 지낸 마크롱은 노동 개혁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만큼이나 노조와 여론의 지지, 그리고 개혁의 ‘골든타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크롱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부터 노사 대표들을 단체별로 만나 8시간 동안 면담을 하고 전국 각지의 토론회에 깜짝 등장해 토론을 이어갔다. 개혁안 발표는 취임 3개월 만에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는 법률 명령 형태로 이뤄졌다. 집권 초기 빠르게 개혁을 추진하고 입법화는 이후에 한다는 것이 마크롱의 계획이었다. 95%에 이르는 산별 협약 적용률을 낮추기 위해 기업 협약 적용 범위를 확대했고 50인 이상 기업이 의무 설치해야 하는 3개 사원 대표 조직을 하나로 통합했다. 부당 해고 보상금 한도를 설정하고 해고 재판 절차도 간소화해 기업의 고용 부담을 낮췄다.


‘엘콤리법’을 한층 발전시킨 마크롱의 노동법 개정안에 대한 노조의 반응은 1년 전과 달랐다. 강성 CGT가 총파업과 시위에 시동을 걸었지만 그해 제1노조로 올라선 중도 성향의 민주노동연맹(CFDT)은 명분 부족을 이유로 파업 불참을 선언했다. 낮아진 지지율에도 “게으름뱅이·냉소주의자·극단주의자들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며 일관된 개혁 의지를 고수하는 마크롱의 집요함에 더해 파업 지지 여론도 약화하자 총파업의 기세는 꺾였다. 개혁을 관철한 마크롱은 2018년 직업훈련을 강화하는 내용의 추가 개혁을 실시했다.



연임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4월 24일(현지 시간) 파리 상드마르스 광장에서 열린 대선 승리 축하 집회에 참석해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역대 최연소 대통령 기록을 세웠던 마크롱은 20년 만에 재선을 이룬 대통령이 됐다. EPA연합뉴스

마크롱의 노동 개혁이 성공으로 평가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프랑스 경제에 나타난 가시적인 성과 때문이다. 2016년부터 꾸준히 하락한 실업률은 2020년 8.01%, 지난해 8.06%를 기록해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청년 실업률은 2016년 24.5%에서 지난해 18.9%로 낮아졌다. 2018~2021년 프랑스 경제성장률은 팬데믹 직격타를 맞았던 2020년을 제외하고 유럽 1위 경제 대국인 독일을 웃돌았다. 외신들은 “마크롱의 개혁이 결실을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 집권 2기에 들어선 마크롱이 코로나19로 중단했던 연금 개혁, 공공 부문 개혁을 예고하면서 이제 세계의 시선은 뚝심·설득·속도가 압축된 그의 성공 방정식이 이번에도 통할지에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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