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값싼 이자를 믿고 전 세계 기업과 기관들이 끌어다 쓴 대출 중 부실 채무 규모가 800조 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여파로 이자 부담이 급증하면서 이들 채무가 연쇄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블룸버그통신은 28일(현지 시간) 자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 세계 부실 채권 및 대출이 약 6500억 달러(823조 원)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11월 기준 630억 달러였던 부실 채무 규모가 올 11월에는 2760억 달러로 4배 이상 급증했다. 통신은 “이제 신용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졌고 경제는 불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부실 채무 규모를 고려할 때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 창업주인 폴 싱어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현재 부채 비율이 과도한 수준”이라며 “침체가 깊어지면 부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들은 실제 벌이에 비해 점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피치북LCD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수익 대비 부채 비율은 올 9월 기준 5.5배를 살짝 밑도는 수준으로 2006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는 곧 기업 실적이 하락하면 돈을 갚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금융 중에서 특히 레버리지론은 부실 가능성이 높은 부문으로 꼽힌다. 레버리지론은 대체로 이미 보유 부채가 많거나 투기 등급 이하 기업을 대상으로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대출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실행된 레버리지론은 8340억 달러로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의 2배 규모였다. UBS 전략가인 매티 미시는 “레버리지론 시장은 과도하고 부실한 대출이 쌓여 있다”며 “만약 연준이 내년에도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지속한다면 채무를 갚지 못하는 비율이 내년 중 9%에 도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디폴트 리스크를 시장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M&G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윌 니콜은 “많은 이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기보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인 듯하다”며 “현재 금리 수준을 고려하면 연쇄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시중금리를 자극할 수 있는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단스케방크에 따르면 독일 등 유럽 내 13개국 정부가 내년에 발행하는 채권 규모는 1조 2000억 유로로 올해보다 10%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내년 3월 양적긴축(QT)에 돌입하면 실제로 시장이 소화해야 하는 물량은 2015년 이후 최대 규모가 된다. 페더레이티드허메스의 선임매니저인 오라 가비는 “채권금리가 파괴적으로 간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지만 공급량이 늘어나는 것은 더 많은 위험 프리미엄(수익률)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컬럼비아비즈니스스쿨의 애비 조지프 코언 교수는 “세계 주요 국가 중 3분의 2는 여전히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이라며 “채권과 신용시장의 위험은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