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이미드필름(PI) 제조사인 PI첨단소재(178920)의 매각 무산을 둘러싸고 PI첨단소재의 납품 계약 해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PI첨단소재 최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운영사 글랜우드PE가 인수자였던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에 수백억원 규모의 납품 계약 해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 인수 계약 종료일쯤 중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뒤늦게 통과한 것도 매각 무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베어링PEA와 글랜우드PE는 매각 무산 책임을 상대방에 돌리며 법적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3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베어링PEA와 글랜우드PE는 지난 6월 7일 1조 2750억 원에 PI첨단소재 지분 54.07% 매각을 위한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12월 28일까지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나 매매대금 납입 등 거래를 위한 모든 절차를 완료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베어링PEA는 지난 8일 글랜우드PE에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베어링PEA측은 현재까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PI첨단소재가 중국 광둥 소군 뉴머터리얼(Guangdong Suqun New Material)과 맺은 207억 원 규모의 방열시트용 PI필름 공급 계약이 해지됐다는 사실을 글랜우드PE가 매각 거래 종결일까지 베어링PEA에 공개하지 않은 점을 공격하고 있다.
글랜우드PE는 납품 계약 해지 사실을 29일 공시했는데 베어링PEA 측은 207억 원은 지난해 PI첨단소재 매출의 6.86%에 해당하는 규모인 만큼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식매매계약 체결일부터 거래 종결일까지 인수 대상 기업의 상태가 동일해야 한다는 점은 통상 기본적인 합의 사항”이라면서 “중대한 변경이 발생한 경우 글랜우드PE가 직접 베어링PEA에 해당 내용을 밝히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전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당국의 승인이나 대금 마련을 거쳐 거래 종결을 위해 필요한 기간은 6개월 안팎인데, 이 기간에는 인수자 측도 경영에 일부 관여하게 된다. 베어링 측은 이 기간 실적에 미치는 중요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고, 그로 인한 대처 과정에서도 자신들이 배제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글랜우드PE는 “해당 납품 계약은 가격 조정을 위해 내년에 다시 협상을 하자는 상대방 요청에 따라 일단 해지한 것으로 중대한 변경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 이라며 “베어링PEA는 1조 2750억 원 규모로 PI첨단소재 인수계약을 체결했는데 207억 원 때문에 파기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PI첨단소재를 폄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PI첨단소재에 대한 중국 당국의 기업결합심사가 28일 승인 나서 29일 통보된 점도 베어링PEA가 문제 삼는 부분이다. 원래 양측은 9월 30일까지 거래를 종결 하기로 했지만, 중국의 승인이 늦어지면서 3개월 뒤로 종결 날짜를 미뤘다.
글랜우드PE는 새로 연장한 거래 종결일은 12월 30일이며, 중국 경쟁당국은 28일에 승인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오히려 중국 경쟁 당국은 기업 결합 승인 의향을 밝혔지만, 베어링PEA가 답변을 늦게 하면서 승인을 의도적으로 지연 시켰다고 보고 있다.
특히 글랜우드PE는 ‘거래종결 조건이 성립한 지 15영업일 이내 거래를 종결한다’는 계약서 문구를 근거로 베어링의 인수 의무가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글랜우드PE는 중국 당국이 승인한 12월 28일 이후 15영업일이 지난 2023년 1월 18일까지 베어링PEA가 거래를 종결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지점에서 베어링PEA와 입장은 크게 엇갈린다. 베어링PEA는 양측이 합의한 거래 종결 날짜는 12월 30일이 아닌 28일이며, 기업결합 심사 승인 등을 완료한 지 15영업일 후까지 거래를 종결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28일부터 역산해 15영업일 이전인 8일까지 승인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날 해지를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는 베어링PEA가 PI첨단소재를 인수한 직후부터 주가가 하락한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가 떨어지는 와중에 계약 체결을 위한 선행 조건조차 미뤄지면서 베어링PEA는 펀드 출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계약 해지를 감수했다는 것이다.
반면 글랜우드 PE 측은 베어링이 이미 계약을 체결한 후 주가가 하락하자 억지로 해지할 명분을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경쟁당국의 심사가 길어진 일도 수 개월째인데 이제 와서 이를 근거로 인수를 철회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매각 무산으로 수익을 거두지 못하게 된 글랜우드 PE 출자자는 대부분 국내 연기금과 공제회고, 베어링 측 출자자는 대부분 중국계라는 점을 이번 일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양측은 얼굴을 붉히는 선을 넘어 법정에서 이번 일을 다투겠다는 태세다. 글랜우드PE는 베어링PEA가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위약금 500억 원과 베어링의 장기간 발생한 손실을 묻겠다며 추가 손해배상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글랜우드PE는 매각 자문을 맡은 법무법인 김앤장을 통해 이번 일에 나설 계획으로 알려졌다.
베어링PEA역시 인수 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맡은 태평양과 함께 대응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양측의 대립이 팽팽한 가운데, 장기간 법적 공방이 이어질 경우 PI첨단소재에도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